관음사
박연폭포 옆으로 관음사로 오르는 길이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자 범사정(泛斯亭)이라는 정자가 폭포와 마주하고 서 있었다. 안내판에는 “1700년에 지은 건물로 여기에 올라서면 마치 안개바다 위에 떠가는 떼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범사정을 옆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 고려 때 지은 대흥산성의 북문에 이른다. 대흥산성은 사적 52호로 천마산과 성거산의 골짜기를 끼고 축성된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가 10.1km가 되며 4개의 큰문과 사이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북문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범사정에서 대흥산성에 이르는 길을 옛사람들은 개성의 ‘금강’이라 불렀다. 특히 가을 풍경이 아름답고 신비로워 금강산에 온듯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북문을 통과하여 30여분동안 850m를 걸어 올라가면 관음사가 있다. 관음사는 보물 33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사찰로 광종 21년인 970년에 법인국사가 처음 창건하였다. 현재는 대웅전과 관음굴, 7층 석탑과 승방 하나로 이루어진 작은 사찰로 남아 있다. 고려 말인 1393년엔 대웅전만한 법당이 5개가 넘었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며 모두 불에 탔다고 하며 현재의 대웅전은 1640년에 고려의 건축을 복원해서 세운 것이다.
대웅전 뒤편 문에 있는 문살은 오른 쪽 문이 미완성인데, 거기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절 근처에 손재주가 뛰어난 ‘운나’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사찰 복원 공사를 하면서 운나에게 문살을 파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글었으나, 일이 많아 갈 수 없었던 소년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걸 알게 된 소년은 “재간(재주)이 원수다.”라며 자신의 왼팔을 자르고 사라졌다. 사찰 일을 하던 사람들이 소년을 잊지 못해, 소년이 파던 그대로 문살을 걸어 놓고 소년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문살에 새겨진 소년의 모습엔 정말 왼팔이 없었다.
대웅전 뜰 아래에는 7층 석탑이 고즈넉한 절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서 있다. 대웅전 왼 편으로는 100년전부터 솟아나오고 있는 샘물이 잇고, 그 옆에 있는 관음굴에는 관세음보살 좌상이 홀로 모셔져 있다. 관광객들은 약수를 떠 마시며, 산을 오르느라 말랐던 목을 축였다.
관음사로오르는길 범사정
천년 약수
관세음 보살 좌상 7층 석탑 앞에서
대흥산성 북문
관음사 대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