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안내원
생전 처음 가보는 북한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버스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거기엔 북측 안내원 세 명이 앉아야 할 자리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밀려나며 답답한 가운데자리보다 높이 앉은 뒷자리가 나을 것 같아 맨 뒤로 가서 앉았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북측 안내원 세 명도 버스에 올라와 그날 안내를 맡은 한 사람만 앞에 있고, 두 사람의 안내원은 내가 앉은 곳으로 왔다. 세 사람이 안내할 필요는 없는데 한 조로 묶어 놓은 것은 서로를 감시하게 하려는 것일까.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의 안내원은 2인용 의자의 제일 뒷자리에 앉았고, 아직 앳돼 보이는 젊은 안내원은 긴 의자의 내 옆자리에 같이 앉게 되어, 북한 사람과 가까이 할 기회가 생겨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 다 용모가 준수한 편이고, 묻는 말 뿐 아니라 개성의 전설이나 역사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잘했다. 옆자리 젊은이는 서른 살이고 작년에 결혼했다고 한다. 아이가 있느냐고 물으니 뱃속에 아기가 들어 있다는 표시로 두 손으로 배를 둥그렇게 해 보여, 옆에 있던 일행과 나는 그에게 축하의 인사를 하고 이름이 ‘김진송’이라고 하기에 이름도 멋있다고 말해 주었다.
개성에는 어제밤새 내린 눈으로 천지가 하얀 세상이었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북쪽은 무섭고 어두운 곳이며, 사람들은 늑대로 표현 되거나 빨간색 이미지로 대변되는 곳이다. 그러나 폐쇄적이던 북한 실정이 조금씩 알려 지면서, 어렸을 때 배운 대로 생각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북한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내 선입견은 하얗게 덮인 세상으로 하여, 어두운 이미지를 덮어 버리고 마음속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버스가 가는 길 오른 쪽으로 봉동역이 보이고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옆으로 상점이 가끔씩 보인다. 상점엔 <물고기상점> <고기남새상점>이라고 써 있고, <봉동리발관>과 학교가 보였다. 버스의 차가운 유리문에 성에가 하얗게 서려 계속 커텐으로 닦아내며 밖을 내다보니, 출근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옆에 앉은 안내원 김진송은 송악산은 긴 머리채를 늘이고 편안하게 옆으로 누운 풍만여인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며 송악산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기도 하였다. 내가 메모지에 그의 이야기도 적고 개성시내의 이것저것을 쓰고 있었더니, “무얼 그리 적습네까?”하고 물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글 쓰는 분이예요.” 라고 하니까 “작가 선생님이십니까? 작가 선생님을 다 만났습니다.”하고 반색을 한다. 내가 작가는 무슨~ 중얼거리며 작가는 아니고 그냥 여행기를 좀 쓰려고 한다니까, “글을 쓰시니 참 부럽습니다.”라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날 개성 관광을 마치고 헤어질 때 그는 웃는 얼굴로 “종자 좀 많이 얻었습니까?”하고 물었다. 처음엔 무슨 뜻인가 의아 했지만 이내 글 쓸 거리를 많이 수집했느냐는 뜻인걸 알아차리고, “네 종자 많이 얻었습니다.”하고 나도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