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
한반도와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 중국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뗄 수 없는 관계의 나라이다. 단군이 민족의 시조로 나라를 연 고조선부터, 고구려와 백제, 신라,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작고 큰 전쟁이 수 없이 있었고, 문화적으로도 공유하는 바가 많았다. 중국을 통해 불교를 받아 들였고, 무엇보다 유교의 영향은 우리의 역사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5박 6일의 중국 여행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유구한 역사와 큰 땅덩어리,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고작 며칠 동안 무엇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저 내가 아는 것만큼 보고, 본 것만큼만 느끼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열심히 메모를 하였다. 애초부터 관광 여행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답사 여행이었기에 계획된 순서대로 여행지를 찾아 다녔다.
여행하는 동안 본 것을, 부족하지만 여행기라고 이름 붙여 기록하였다. 그러나 지루하게 읽게 될 것을 염려하여 되도록 간추려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대륙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9,572,900 ㎢의 면적과 13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한 쪽 귀퉁이만 보았을 뿐이지만, 본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낀 여행이었다. 여행기에는 표해록 답사 여행기라고 하면서도 정작 표해록과 최부에 관해서는 소홀히 다룬 점이 있어, 표해록에 대하여 추기 하려고 한다.
떠나기 전에 사전 지식을 얻기 위해서, 최부(崔溥)의 표해록(漂海錄)을 읽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표해록의 내용에 매료되고, 최부에게 반하고 말았다. 오! 오! 어찌 그렇게 멋진 남자가 그 옛날에 있었단 말인가. 어떤 중국인에게도 꿀리지 않는 풍부한 지식과, 위험한 경우에도 상복을 벗지 않는 효심, 같이 표류한 관리와 군인, 뱃사공과 하인 등, 42명의 일행을 한사람도 잃지 않고 조선으로 이끌고 돌아온 리더십은, 감탄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표해록은 금남(錦南)최부가 1488년 1월 30일부터 6월 4일까지 6개월 동안의 일을 일기체로 쓴 표류기이다. 바다를 표류한 것은 14일 동안이었고, 그 후로는 중국의 강남을 거쳐 항저우(抗州)~베이징(北京)간의 1800km 경항(京抗)대운하를 배를 타고 북경에 도착하여, 6월 14일 한양의 청파역에 도착한 기록이다.
1487년(성종 18) 9월 최부는 제주추쇄경차관(濟州推刷敬差官)으로 제주에 부임했다. 이듬해 1월 부친상을 당해 나주의 집을 향해 출발했으나, 폭풍을 만나 14일간을 표류한 끝에 일행 43명을 태운 배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영파부(寧波府)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왜구로 오인 받아 온갖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지금의 장쑤 성[江蘇省]을 거쳐 북경에 도착한 뒤 다시 요동성(遙東省)을 거쳐 귀국하였다. 표류 끝에 중국을 거쳐 돌아온 최부의 이야기를 들은 성종은 양자강 남쪽의 견문록을 쓰도록 명하여, 그간의 일을 저술하게 된다. 중국 동쪽 연안지방의 해로(海路), 기후, 산천, 도로, 관부(官府), 풍속, 민요 등은 물론이고, 각 지방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정치가, 무인, 문인, 효자 등의 인물까지도 폭넓게 기록하였다. 특히 북경으로 호송당하는 과정에서 수차(水車)의 제작법과 이용법을 배워 왔는데, 1469년(연산군 2) 호서 지방의 가뭄 때 이를 보급해 가뭄 극복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일본 승려 옌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더불어 3대 중국 여행기로 꼽고 있으나, 광범한 문화적 함축성과 각 분야를 망라한 풍부한 내용, 사료적 가치, 중국에 대한 인식도는 두 저서를 뛰어 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표해록은 단순한 표류기가 아니라, 조선의 한 지식인 청년에 의해 씌여진 중국 견문록으로써, 당시 중국에서도 경제와 문화가 잘 발달 되었던 강남(江南) 지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최부의 글은 유교 가치관에 철저한 조선 전기 선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단한 이역만리의 피폐한 상황에서도 그는 기개를 잃지 않았고, 해적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했으며 환관이 발호하는 중국 정치를 질타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헌부 감찰, 홍문관 교리를 지내며, <점필재>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 칭송 받던 최부는 안타깝게도 51세 되던 1504년 갑자사화 때 목숨을 잃게 된다.
내가 표해록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가는 곳마다 마을 이름에서부터 만났던 인물들의 이름을 자세히 기술하였고, 그들의 심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는 넓은 지식을 갖춘 점이었다. 표해록에 적혀 있는 마을이나 산과 강은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이 꼭 들어맞는다고 하니, 정확한 사실 묘사가 그의 기록 정신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표해록은 문학적 가치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뛰어난 문장력을 갖추고 있다. 자연을 관찰하고 느낌을 적거나, 고초를 당하는 상태의 표현이 사뭇 문학적이다. 여행기를 쓰면서 불과 한 달 전의 일을 기억해 내느라 힘들었던 나로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파와 표류 끝에 조선인의 내왕이 전혀 없던 중국 강남 지방에 표착해서, 거기서부터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기구한 경험을 기록한 표해록은, 당시에도 성종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관심과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사화로 목숨을 잃은 후 그의 글은 대부분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가, 60년 뒤에야 당시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최부의 외손 미암(眉岩)유희춘(柳希春)에 의해서 다시 목판본으로 엮어지게 된다. 최부는 정실부인에게서 딸만 셋이 있었는데, 미암은 장녀의 아들로서 외손자이다. 몇 년 전에 미암 일기가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 하노라'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와서 읽었는데, 조선시대 양반 가정의 일상을 일기로 소상히 적어 놓아, 그 시대의 풍속과 가례를 알 수 있었다. 미암의 부인 송덕봉(宋德峯)도 다양한 소양을 갖춘 양반 여성이자 대단한 시적 감각을 지닌 문인으로 덕봉의 시문을 모은 책이 남아 있다. 문재(文才)는 유전으로 이어지지만. 일기로 500여 년 전의 일을 후대에도 알 수 있게 한 것은, 과연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 할 수 있겠다.
표해록은 조선시대에만 다섯번이나 간행되었다. 1769년에 일본에서 당토행정기(당토행정기)라는 제목으로 '키요타'가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1965년에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 교수인 'john Meskill'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 서울대학 총장 고병익 박사가 고서 연구를 하며 알려지게 되었다. 또 1992년에는 중국의 북경대학 '갈진가' 교수가 발간하기도 하는 등, 국내외의 관심이 고조 되고 있다. 표해록은 자라나는 학생은 물론, 누구나 한번 쯤 읽어 볼 만한 책이다.
* 내 여행기가 재미있게 읽혀지기를 바랐으나,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별것도 아닌 걸 쓰면서 나이 탓인지 조금 힘이 들기두 했구요. 모모가 나더러 쓰라고 했을 때 못한다고 할걸 하고 후회를 했지만, 책임감 때문에 그만 둘 수도 없었습니다. 어찌 됐든 이젠 내 손을 떠났으니 후련할 뿐입니다.
표해록을 끝낸 후 느낌 "내가 젊을 때 최부가 현신해 온다면 그를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만큼 훌륭한 남성이라는 얘기>
경주 남산 다녀와서 누가 좋은 여행기 써 주기를 기대 할께요.
* 존 메스킬 john Meskill 전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
이책의 저자 최부는 고난을 용기로 극복하고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한 전형적인 조선의 용기있는 지식인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최부는 유교의 교리와 실제의 일상적인 사건을 흥미롭게 결합시키려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자화상은 조선의 문화와 정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한충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 고병익(高柄翊) 전 서울대학교 총장
이책은 한 편의 관광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편이 하나의 응축된 시대 정신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록은 조선시대 사대부가 당시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을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것이여서 우리 사학계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등에서도 조선 선비의 독특한 중국기행문으로 일찍부터 크게 주목 받아 온 우리 민족의 중요한 사료이다.
* 갈진가(葛振家) 중국 북경대 교수
중국의 시각에서 보면 광범위한 문화적 함축성, 각 분야를 망하한 풍부한 내용, 사료적 가치, 중국에 대한 인삭도 등 제반 분야에서 보인 학술적이고 사료적인 이책의 가치는 이 방면의 대표적인 저술이라고 볼 수 있는 원인원인의 <입당구법순례기>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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