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비
선죽교를 보고나서 표충비를 보기 위해 길을 건너갔다. 표충비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의 임금인 영조와 고종이 세운 것이다. 왼쪽에 세워진 비가 영조(1740년) 때 세운 것이고, 오른편의 비가 고종(1872년) 세운 것이다. 암 수 두 마리의 거북의 등위에 세워 놓은 비석의 글씨는 영조의 어제어필인 포충비(褒忠碑)와 고종의 어제어필 표충비(表忠碑)이다. 거북을 새긴 조각 솜씨가 하도 섬세하여 사람들은 만져 보고 들여다보며 신기해 마지않는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고려성균관은, 고려 문종의 별궁인 ‘대명궁’이 있던 자리에 992년 성종이 국자감을 옮겨 온 곳이다. 그 후 성균관으로 바뀌었고, 1988년부터는 고려시대 유물을 전시하는 고려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려성균관 경내에 들어서니 1000년의 수령을 자랑하듯 은행나무 두 그루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성균관 정면으로는 명륜당이 있고, 그 뒤로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 앞에는 망월대와 수창궁에서 출토된 용머리 조각이 자리 잡고서 옛날의 위용을 자랑하는 듯하였다.
박물관 전시장 안은 에너지 부족 탓인지 겨우 한 쪽에만 불을 켜 놓아, 유물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약 1000여점의 유물은 모두가 진품으로 가치가 대단한 것들도 많았다. 그 중에 전(顚)자가 새겨진 금속활자는 고려왕궁터인 만월대에서 발견된 것으로 12세기에 제작된 금속활자인데, 독일의 쿠텐베르크가 만든 것보다 300년이나 앞선 것이라 한다.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인 것이다. 가로세로 1cm 크기인 이 금속 활자 위에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확대경을 설치해 놓았다.
4개의 전시관 중 한 곳에는 적조사 터에서 옮겨온 적조사 철불이 있고, 또 한 전시관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 석관을 비롯하여 금속공예와 건축, 조각 회화 등이 있었다. 그리고 야외 전시장에는 불일사5층석탑(951년) 흥국사탑(1021년) 현화사7층탑(1020년) 현화사비(1022년) 개국사석등(935년) 등 석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돌아오는 길
박물관 견학 후에 기념품 상점에 들러 기념품을 사고 귀로에 올랐다. 개성 출입국 사무소에 들어오는 시간은 8시이고 나가는 시간은 5시이다. 아침엔 8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갔고, 저녁엔 5시가 될 때를 기다려 출발 할 수 있었다. 나오기 전에 개성 출입국 사무소에서 카메라 검사를 받았는데, 찍은 사진을 일일이 본 후에 이상이 없어야만 한다. 그래서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와, 먼 곳을 볼 수 있는 160m이상의 망원렌즈 카메라는 절대로 안되고, 디지털 카메라만 가지고 갈 수 있다. 내 카메라의 배터리가 다 떨어져 사진을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사무실로 가지고 들어가 다른 배터리를 끼워서 보았는지 한참 후에 가지고 나와 돌려주었다.
개성에서의 오늘 하루의 일정은 이제 끝이 났다. 북측 안내원은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며 또 오라고 하였다. 아침에 갔던 길을 돌이켜 나오며 나무가 무성한 우리의 산야를 본다. 낯익은 산천이 관광객들이 탄 버스 곁을 스쳐 지나가며 반겨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