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다시 배를 타고>
드디어 5일 동안 타고 다녔던 버스의 경적 스트레스와, 시원하다 못해 추웠던 에어컨에서 놓여났다. 12시 쯤 진황도 항 국제 터미널에 도착하여, 통관 수속을 마치고 여객선 ‘욱금향호’에 승선 하였다. 선실은 오던 날 들었던 그 방 그대로여서, 짐을 부려 놓고 곧바로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지만, 밥이 넘어 가지 않아 그냥 수저를 놓고 말았다. 여행 내내 점점 심해져 가는 감기에 시달려, 이제는 더 이상 지탱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머리가 지끈 지끈 아프고 밥맛도 없어, 바람을 쐬면 좀 나을까 하여 갑판으로 올라갔다.
배는 우리의 조상들이 활동했던 발해만을 지나가고 있다. 갑판에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제일 연로하신 두 분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아픈 것을 보더니 지압을 해 주겠다고 하였다. 중국에 도착하던 날부터 병이 나는 바람에, 병원 신세만 지다가 그냥 돌아가시면서 나를 치료해 주시겠다는 원 박사님은, 평소에 바르게 걷기 운동을 보급하고 있다. 옆에 계신 분은 더 연세가 많아 86세인데, 몸집이 건장하고 아주 건강해 보이며 그분은 지압을 배웠다고 한다. 두 분이 번갈아 내 머리통과 어깨를 누르며 지압해 주시는데, 의자에 앉아 받으려니 겸연쩍고 미안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내 기氣가 두 분에게로 옮겨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분들은 내게는 아버지 벌 되는 연세이시니~
<수지침을 맞고>
갑판에서 내려와 아직 저녁 식사 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고, 할 일도 없어 배의 의무실에서 가져다 준 두통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착한 모모가 나를 침대 위쪽으로 올라가라고 하지 않을 테니 나는 당연히 침대 아래쪽을 차지하였고, 옆 침대의 두 여인도 갈 때처럼 교감선생이 아래, 국악을 하는 여인 ‘인평’이 위쪽으로 올라갔다. 교감 선생이 수지침 통을 꺼내서 내 손에 침을 놓아 주었다. 열 손가락과 손등에 고슴도치처럼 가는 침을 수없이 꽂은 채, 침이 닿지 않게 하려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쥐고 잠이 들었다.
<이층 침대에서 떨어져>
약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잠결에 무슨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린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위쪽에서 자고 있던 여인이 바닥에 떨어져 “아구구 아구~ 아우 아파 아으~”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는 했으나, 침이 박힌 고슴도치 손으로 어쩔 줄 모르고 “어떻해” 소리만 연발하였다. 교감 선생이 나가고 없어 옆 침대에서 잠들었던 모모가 일어나 사람들을 불러 왔다. 의사가 와서 그녀를 의무실로 데려가 금이 간 팔은 붕대로 고정 시켜 놓고서야 그날의 사건은 끝이 났다. 다행인 것은 자다가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는 정신없이 내려오다가 발을 헛딛는 바람에 떨어져 많이 다치지 않은 것이다. 다행이라 안심하고 나니,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다소 무거워 보이는 그녀가, 떨어질 때 “쿵” 소리가 났을까? “철퍼덕” 소리가 났을까? 자느라고 그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궁금해 하며 남몰래 웃었다.
<밤바다>
입맛이 없을뿐더러 위속에서도 받아 주지를 않아, 저녁밥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쉬운 이 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젊은 사람들과 교수들, 그리고 몇 몇 사람들은 마지막 밤을 불태우러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약 때문인지, 수지침 효과인지, 아니면 두 어른들의 지압 덕분인지 두통은 말끔히 나았다. 노래방에서 조금 어울리다가 지루하기에 밤바다를 보러 갑판으로 올라갔다.
끝없이 넓고 어두운 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을 바라보며 고조선 역사 답사과정을 되돌아본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차를 타고 서너 시간을 달려가 몇 천 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보았고, 다시 달려가 또 다른 흔적을 찾아 헤매었다. 흔적일 뿐 손에 잡힌 건 없었지만,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떠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도 오랜 세월을 땅속에 묻혀 있다가 뼈를 드러내고, 사용했던 물건들을 아낌없이 내어줘, 그때의 문화를 알게 한 사람들의 흔적 앞에서, 나는 영원과 영혼에 대해서 생각 하였다.
새로 개편되는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를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 단군왕검은 당시 지배자의 칭호였다”로 단정적으로 서술한다니, 그 일도 앞으로 고조선의 역사를 찾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갑판 위 희미한 불 빛 아래서 우리 답사팀원 몇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나도 옆에 끼어 앉아 수필가이신 한 분과 수필 얘기를 한참 하였다. 그 분과 얘기해 보니 수필에 대한 열정이 남 달랐다. 요즘 들어 다른 일에 정신 쏟느라 글 쓸 시간이 없는 나에 비해, 그 분은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아 보였다.
<선상 카페의 밤은 무르익어가고>
해풍에 날아오는 습기가 눅눅하게 몸에 달라붙어 끈적이고, 바람도 다소 거세지고 있어서 모두들 아래로 내려 왔다. 다시 카페로 들어갔을 땐, 노래방에 있던 사람들이 카페에서 가수의 연주와 노래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카페 안에는 빈자리 없이 사람들이 많았는데, 중국에 가든 날 같이 탔던 ‘충주팝스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또 같은 배에 타고 있었고, 한국으로 여행 가는 길이라는 내몽골 무슨 대학교 젊은 여자 교수들 십여 명과 남자 교수들이 있었다.
오늘도 청주 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자가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지위 따위는 벗어 던져 버렸다. 젊은 교수도, 나이든 교수도, 출판사 사장도, 박사 과정에 있는 젊은 사람들도, 기호학이 전공이라는 노처녀 여교수도, 몽골 여성들도, 그리고 모모와 나도 무대위에서 감미로운 음악에 빠져 들었다. 술잔이 오가는 가운데 젊은이들은 어느 틈에 몽골 여교수들과 합석하여 즐거운 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