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호령으로 끌려온 포로들은 특수공인으로 불리며, 전압이 흐르는 철조망 안에 갇혀 지내야 한다. 그들이 도망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해 개를 철조망에 던지자 까맣게 타 버렸다. 콩깻묵과 조를 굶어죽지 않을 만큼 배급해 주고 2할의 증산을 명령한다. 오랫동안의 굶주림과 영양실조와 피부병에 시달리고 지친 특수공인들에게,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시켜야하는 가지는 마음속에 분노가 끓는다.
채광소의 소장은 포로들을 한 달간 쉬게 한 후에 일을 시키려했던 계획을 바꾸어, 3 주일 만에 일을 시키며 매우 만족해서 가지에게 물었다.
“포로들이 도망갈 염려는 없나?”
가지는 속으로 ‘도망갈지 안 갈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그들 자신뿐이다.’라고 하면서 소장에게는
“없다고 생각 합니다” 라고 말했다.
소장은 포로들이 도망치지 않게 하려면 일할 보람을 찾아 주어야겠다고 한다.
“그래서 특수공인들에게 지급할 공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임이라니. 치열한 전쟁 중에 포로에게 일시키고 공임을 지불했다는 역사를 나는 아직 읽은 적이 없네.”
“그렇습니까. 그러면 제가 그러한 역사의 창시자가 되겠지요.”
가지는 비꼬듯 말했다. 소장은 가지에게 포로들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임을 지불해 주면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지금 돈이 있어도 쓸 곳이 없으니, 그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자유입니다.”
“자유라, 자네는 시인일세. 혹은 철학자라고나 할까.”
소장은 비웃었다. 가지는 입을 굳게 다물고는 ‘시인도 철학자도 아닙니다. 월급쟁이조차 아닙니다. 양을 모는 개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으며 자신을 자책하였다.
“우리 속에 갇혀있는 인간이 가장 절실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 것 같은가?” 하고 소장이 다시 물었을 때 역시 자유라고 말하자 소장은 웃으며
“여자지. 사내라면 여자야. 여자라면 사내고.”
나는 친절하게 소설의 줄거리를 쓰고 싶었습니다. 내 감동을 누군가에게 다시 전달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꼭 해 내려고 했었지요. 며칠을 끙끙 거리며 책을 펼쳤다가 덮기를 수십 번~ 잘 보이지 않는 글자에서 줄거리를 찾아내기란 안경 안 쓰고 작은 바늘에 굵은 실 꿰는 것과 같아서 더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그래도 마지막 장면만은 설명해야 하겠기에 덧붙입니다.
군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험한 광산으로 왔던 ‘가지’는, 결국 예비소집영장을 받고 군대에 가게 된다. 도망치던 포로 일곱 명이 잡혀서 사형을 당하게 되는데, 헌병들이 단칼에 목을 쳐 버리는 형벌이다. 가지는 어떻게 그들을 살려 낼 수 없을까하고 밤새 고민해 보았지만, 어렵게 붙잡은 행복을 이대로 빼앗길 수 없는 미찌꼬가 결사적으로 말렸다. 다음날 가지는 처형장의 목격자로서 몸서리 쳐지는 주검의 현장에 증인처럼 서있어야 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죄 없는 중국 사람의 모가지들이 풀잎을 베이듯 내리치는 일본도 밑에 머리와 몸으로 두 동강이 나서 뒹굴었다. 세 사나이의 목이 뎅겅뎅겅 달아나는 것을 보고 가지는 마침내 결연이 서서 헌병들에게 반항 했다. 그 주변에 지켜 서서 노려보고 있던 수많은 공인들의 소동으로 헌병들은 남은 네 사나이의 목을 짜르는 것을 중지 하였다. 가지는 헌병대에 붙잡혀 영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동족 간에도 꼭 같이 잔인무도 하여, 때리고 차고, 치고 밟고 하였는데 가지는 이렇게 온갖 고문을 받고도 군대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입대한 ‘가지’의 앞날은 하고 많은 일들로 파란만장하였다. 군대 고참들의 온갖 모욕과 만행을 견뎌야했고,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가지는 더 많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 막바지에 일본군은 패하기 시작하였고, ‘가지’는 패잔병이 되어 깊은 산속을 헤매며 추위와 굶주림과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여러 번~ 피난길에 만난 패잔병들과 일본인 피난민들을 이끌고 가면서 그가 벌이는 인간적인 일들이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같이 피난하던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더러는 굶어 죽고 더러는 병들어 죽었고, 또는 다른 길로 헤어지기도 하며 마침내 ‘가지’ 혼자 남는다.
‘미찌꼬’를 찾아가는 ‘가지’의 마지막 장면~
산길을 헤매다 마을을 찾아 온 ‘가지’는 만두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만두를 만들고 있는 노인에게 입을 벌리며 하나만 달라고 했으나, 노인은 욕설만 퍼 붓는다. 노인이 안 보는 틈에 만두 한 개를 훔쳐들고 뛰다가 잡혀 뭇 사람들에게 매를 맞는다.
“때려 죽여 우리를 못살게 군 일본 놈이야”
젊은이가 ‘가지’에게 만두 한 개를 쥐어주며 빨리 가라고 하였다. ‘가지’는 비틀거리며 걷는다. 고기만두를 두 손에 들고 바라보며 그러나 입에 가져가지는 않는다. 식욕은 매를 맞는 동안에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눈이 내린다.
‘가지’는 걸음을 멈추고 먼 마을의 불빛을 바라본다. 그곳이 사랑하는 미찌꼬가 있는 ‘노호령,의 그리운 산 같았다.
“미찌꼬여! 나는 마침내 돌아왔다. 아아, 얼마나 먼 길이었든가. 여기까지 돌아온 나를 미찌꼬여 보아다오.”
‘가지’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다가 생각난 듯이 네모반듯한 만두를 꺼냈다. 만두는 돌 같이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가지는 만두를 볼에 비비고는 미찌꼬에게 먹일 생각을 하며 헤죽이 웃었다.
“미찌꼬, 당신은 기뻐해 주겠지. 오늘밤 나는 당신을 보게 된다오.”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손을 만져본다. 추억을 한다. 그렇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오늘밤 찾아 낼 것이다. 우린 곧 만나게 돼. 오 분만 나를 쉬어가게 해 주어. 틀림없이 오늘 밤 중으로 돌아 갈 테니까.’
‘가지’는 행복한 미소를 몇 번이나 여윈 볼에 지었다. 그리고 거기가 부드러운 잠자리인양 그루터기 아래에 몸을 뉘었다. 문을 열면 미찌꼬가 미친 듯이 반가워 할 그 순간의 얼굴과 집안의 따듯한 불기 밖에 염두에 없었다.
눈이 쌓인다.
먼 불빛마저 가릴 것 없는 이 어두운 광야에 조용히 그리고 가만 가만한 발걸음으로 시간이 흘러간다.
눈은 무심히 흩날리며 내려 쌓여, 이윽고 사람이 누운 모양의 낮고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스물일곱 해를 보낸 ‘가지’의 험한 생애가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숱한 고생 끝에 마을을 찾아 살길이 열렸는데 전장 터에서도 아니고 얼어 죽다니~ 허무할 만도 한데, 허무한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가지’가 미찌꼬를 찾아가 재회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이 끝이었다면 감동이 덜 했을 것 같습니다. 줄거리도 다 쓰지 못했지만, 줄거리를 다 썼다 해도 책은 꼭 읽어 보셔야 합니다. 그 수 많은 감동의 순간들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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