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미카와 준페이 作 <人間의 條件>(1)

예강 2008. 5. 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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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살 때 펜팔을 하던 대학생이 있었다. 문학을 공부하던 사람으로 그 당시 戰後文學의 한 경향이었던 實存主義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읽을만한 책을 편지에 써 보내주곤 하였는데 이 책도 그중에 하나이다.  1962년에 출판한 것인데 그해에 바로 사서 다 읽지 못하고 묵혀 두었던 책을, 45년 만에 다시 손에 들었다. 대동아전쟁 막바지 일본민간인과 군인, 중국인들과 소련군들이 만주에서 벌이는 대 서사시이다. 이렇게 열거해 놓고 보면, 내용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소설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서문에서 작가는 무엇을 쓰든 재미있어야 한다는 觀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재미는 評子들에게 通俗的이라는 평을 들을만한 재미라고 했지만 소설은 통속적이지 않았다. 작가는 그러면서도 재미의 量이 아니라 主題의 質이 문제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픽션이다. 가지를 비롯해서 인물은 실존하지 않는다. 어느 시대이고 역사의 사실은 픽션보다 더욱 복잡하고 드라마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수한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짜 놓은 장대한 사회극이기 때문에 그런 역사를 두고서는 허구라는 수법에 의존 하지 않으면 진실의 문에 가까워지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조건은 일본에서 출판 되었을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그 후에 다시 5권으로 발행 되었는데, 그 때도 독서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작가는 제목을 정하면서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명의 ‘앙드레 말로’의 동명의 작품이 있어서 망설였지만, 제목을 달리 붙일 방도가 없었다고 하였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인간이 갖추어야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소설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인격이 무시되고 자존심이 뭉개졌을 때, 존엄성은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가지’는 자신의 온 몸을 던져 그것을 지켜 내기 위해 분투한다. 그는 거대한 전쟁 앞에 두려움을 갖는 나약한 소시민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일수 없는 상황에서 분노한다. 나는 그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 '가지'는 소설을 읽는 동안, 내 가슴을 떨리게 하였고 지금은 내 마음 한 구석에 들어와 아예 둥지를 틀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참혹함을 비판하고, 전쟁의 극한 상황속에 벌어지는 일본군의 비인간성에 대항하는 소설을 일본작가가 썼다. 나는 우선 그 것에 감탄하여 작가에게 박수를 보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구조이지만 정작 전투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군대라는 집단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패잔병이 되어 도망치며 겪는 굶주림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참혹한 일들이 지루할만도 한데, 소설은 비슷한 상황의 폭력조차도 전혀 낯선 장면만을 연출해 놓는다.  숨가쁘게 전개되는 사건을 따라 가느라 지루하기는 커녕, 감동하기에 바빠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우선 여기까지 쓰고, 이제부터 <인간의 조건>을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해 내용을 비교적 소상히(간추려서) 올려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