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쓰시마)

9. 세잔지, 학봉 탑(鶴峰塔)

예강 2014. 12. 10. 21:38

9. 세잔지(西山寺)

 

 

<세잔지>

  서산사는 이즈하라 포구가 한 눈에 보이는 고우다케 언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에도시대의 풍경이 남아 있는 ‘이즈하라’ 마을길을 돌아 골목길 안쪽에 서산사가 있었다. 크고 작은 돌들을 견고하게 쌓은 높은 돌 축대가 있고 그 중앙으로 난 돌계단을 올라가, 문을 들어서니 일본식 정원의 전형인 아름다운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의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일본인들의 정원은 물이 있는 곳에 지었는데, 물 대신 모래로 물을 표현한 것을 다른 정원에서도 보았고, 여기도 모래 연못이 있었다. 이 양식 이후로 물이 없는 곳에도 정원을 꾸밀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물을 쓰지 않고 모래로 물을 표현하고, 돌을 세워 산과 나무를 표현한 정원의 모습이다.

 

 

서산사는 9세기 이전에 세워진 오래된 건축물로 에도시대인 1611년에 대마도 출신 승려인 ‘겐쇼’가 대조선국 외교기관이자 감찰 기관이었던 토쿠가와 막부의 ‘이테이앙以酊庵’이라는 암자를 설치하였다. 겐쇼는 대마도 영주 소씨의 보좌 승인데, ‘고니시 유키나카’의 사위인 대마도 영주 소씨를 따라 임진왜란 당시 종군 승으로 참전했었고, 훗날 국서위조사건이라는 유명한 사건을 일으킨다. 이곳은 국서 위조사건 이후 외교문서 작성이나 위조를 감찰하기 위해 막부가 교토의 승려를 교대로 파견하던 곳으로 조선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이테앙’은 임진왜란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던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평등한 외교관계를 유지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통신사가 쓰시마에 체류 하였을 때에는 객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유스호스텔로 이용되고 있다.

 

 

<학봉 탑(鶴峰塔)>

  정갈하게 잘 다듬어 놓은 수선사 정원에 1590년 조선통신사 부사로 다녀간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시비가 눈길을 끌었다.

“1591년 음력 2월 일본에서 돌아와 부산에서 각기 조정에 상소를 올릴 때, 황윤길은 반드시 왜군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고, 김성일은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 또 풍신수길의 인상을 묻는 선조의 질문에,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하였고,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아 마땅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라고 평하였다. 류성룡이 김성일에게 "그대가 황윤길의 말과 고의로 다르게 말하는데, 후일 병화가 있다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묻자 "나도 어찌 왜적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일까봐 그런 것입니다." 라는 말로 무마하였다.” 학봉의 조선통신사 보고에 늘 따라 붙는 내용이다.

 

  일본의 절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모시는 비석이 가득 놓여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비석이 우리나라의 공동묘지처럼 들어 차 있다. 시비가 있는 정원에서 수많은 비석을 지나 작은 동산 꼭대기쯤에 삼단으로 된 돌 기단 위에 鶴峰塔이라고 쓴 작은 탑이 있다. 학봉의 후손들과 일본인들이 세운 작은 기념탑이다. 바로 옆에는 수선사를 지은 ‘겐쇼’ 스님의 부도 탑이 세워져 세잔지 정원과 비석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