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古都 앙코르왓트

바이욘(Bayon) 사원

예강 2014. 12. 8. 01:18

바이욘(Bayon) 사원

 

 

<툭툭이를 타고>

  오후의 일정은 ‘바이욘 사원’을 보는 것으로 시작 했다. 한 군데서 볼 수 있는 ‘앙코르와트’와 달리 방대한 규모의 앙코르톰을 보려면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이’를 타고 다녀야 한다. 두 사람씩 ‘툭툭이’를 타고 ‘바이욘’을 찾아 달려갔다. 왜 ‘툭툭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털털 거리며 달리니까 털털이라고 하거나 작은 마차 같으니 딸딸이라고 하는 게 더 그럴 듯한데~ 툭툭이에 앉아 앞에 앉은 운전사들의 조끼 등판을 보니 이름대신 사용하는 일련번호가 적혀 있다. 달리는 툭툭이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캄보디아인들의 생활을 눈 여겨 본다. 높은 버스에서 보는 것 보다 거리의 풍경이 훨씬 가까이 보여 자세히 관찰하기에 적당하다. 거리의 상가에는 양복점이 자주 보인다. 양복점 마다 양복천이 많이 걸려 있었고 재봉틀로 양복을 만드는 남자들이 서너 명씩 보인다. 우리나라도 기성복이 유행하기 전인 60~70년대에 양복점과 양장점이 많았다. 그때는 기성복을 사 입는 것 보다 옷을 맞추어 입는 일이 많았다.

 

 

<바이욘 사원>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는 문중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남문 입구에는, 흰두교 신화에 나오는 유해교반 조각이 먼저 관광객들을 반긴다. 조각은 흰두교의 천지창조신화 비슈누신의 좌우의 신들과 아수라가, 커다란 나가(뱀)로 바다를 저으면 바다는 유해로 변하고 거기서 불로불사의 약을 얻을 수 있다는 신화의 얘기로, 나가(뱀)를 줄다리기처럼 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는 머리가 떨어져 나간 조각상들도 있다. 바이욘 사원으로 들어 가 보니 그곳 외벽에도 앙코르와트와 마찬가지로 회랑에 부조가 있는데, 사방 600m에 이르는 부조는 크메르인들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

 

  앙코르 유적은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는 곳으로 사진으로 많이 본 곳이다. 그러나 어디 직접 보는 것 만 하겠는가. 사진과 실물은 천지 차이다. 12세기 말에 돌로 건축한 신비의 사원을 직접 보고 감동을 느껴 보아야한다. 앙코르유적은 크게 앙코르와트와 앙코르 톰으로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중심을 이루는 정사각형으로 지어진 불교사원이다. 앙코르 시대는 9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는 크메르왕조시대로, 초기에는 흰두교를 믿고 중반 이후에는 불교 국가로서 뛰어난 건축물을 남겼다. 바이욘에는 54기의 석탑이 있는데 탑의 네 면에 얼굴이 조각되어 있어 모두 216개가 된다고 한다. 크메르인들은 탑에 조각된 얼굴의 주인공을 바이욘 사원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1181~1120)라고 믿는다. 1층 회랑 벽면에 3단으로 구성된 부조에는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비롯하여 타이족의 한 부류인 참족(cham)과의 치열한 전투 장면이 사실처럼 묘사되어 있다. 왕권 확립을 위해 앙코르의 왕들은 도시와 사원을 만들게 되는데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건설하였고, 앙코르의 마지막 수도인 앙코르톰은 자야바르만 7세가 세웠다. 유적규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두 왕이 집권했을 때가 앙코르왕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다. 특히 자야바르만 7세는 그 당시 앙코르를 지배했던 참파족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후 현재의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베트남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대 제국을 건설하여 지금까지도 캄보디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건축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도로와 사원을 건설하였고,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거대한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앙코르톰이다. 100m의 인공해자에 둘러싸여 가로 3km, 세로 3km, 총 12km에 걸쳐 8km 높이의 성벽이 세워져 있는 앙코르톰. 이 거대한 왕궁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토목공사를 한 것이 앙코르 왕국을 쇠퇴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종일 타고 다닌 툭툭이 기사~ 툭툭이 기사들의 조끼 등에 일련번호

 

재봉틀로 양복을 만드는 남자들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와불(누워있는 부처)이 다리가 떨어져 나간 채 누워 있다.

 

 압살라 여신상 (옛 크메르인들은 찢어진 귀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회랑 벽면에 3단으로 구성된 조각품에는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비롯하여  

타이족의 한 부류인 참족(cham)과의 치열한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전쟁에 나가는 남편을 붙잡고 언제 돌아 올거냐고 푸념하는 마누라  

 

  전쟁이 길어지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가져가야한다.     

 

  아이도 데려가고, 가다가 약도 다리고, 꼭 이사가는 것 같다.

 

중국서당 풍경(그 당시 중국 상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수업료로 닭과 오리를 가져온다. 오른 쪽 끝에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학생도 있다. 

 

 돌로 만든 사원은 온통 회색 이다

 

앙코르의 미소 

 

  쟈야바르만 7세와 닮아 왕이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관음불상이 되고자 하였다고 한다.

 

  카메라 배터리 갈고 이 사진 찍느라 좀 늦었더니~

 

 일행들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둘이 떨어져서 그래도 다행~ 일행이 어디선가  나타 나겠지 하며 꾿꾿이 사진만 찍었다. 

 

 

 일행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 한 후여서 툭툭이 기사가 찾으러 왔다. 그래서 문둥이왕 테라스와 코끼리 테라스를 보지 못했다.  어찌나 빨리 휙휙 다니는지 다 보기는 어렵다. 패키지 여행 말고 자유 여행으로 다시 가 보고 싶다.  

 툭툭이 같이 타고 다니고 같이 일행 잃어 버렸던 짝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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