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추웠을까
“어서 버리거라”
“할아부지이~”
“허어~ 쯧”
개울 옆 뚝 길을 걸어가는 내내 외할아버지와 손녀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계속 버리라고 재촉하고 소녀가 품안에 꼭 끌어안고 놓으려 하지 않는 것은, 누이면 눈을 감고 세우면 긴 속 눈썹을 치켜 올리며 동그란 눈을 반짝하고 뜨는 통통한 서양인형이다.
할아버지를 따라 엄마를 찾아가는 그해의 마지막 날은 눈발이 포근하게 나리고 있었다. 소녀는 뚝 길 아래 얼다 말다 졸졸 흐르는 개울 물 속으로 사뿐히 내려앉아 시나브로 스며드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발등위로 눈물을 툭툭 떨어뜨리며 할아버지를 따라 가고 있다. 엄마는 군대에서 제대한 아버지와 그해 여름부터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아 소녀와 동생은 부모님과 떨어져 큰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 외할아버지가 찾아 오셔서 ‘금촌’에서 ‘법원리’까지 버스를 타고 왔지만, 거기서부터 엄마가 있는 마을까지는 두 세 시간에 한 번씩만 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길이다. 걸으면서 할아버지는 사람의 형상을 한 인형에 귀신이 붙어 있어, 해를 입힐 수 있으니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 인형은 소녀가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처음 받은 선물이다. 인형을 선물로 받았던 그 때는 동족상잔이니 분단의 비극이니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지옥과 같은 전쟁의 고통에서 막 벗어난 1953년이었는데, 소녀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여덟 살의 숫배기 계집아이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려 물자가 부족 하던 시절이었다. 국제 적십자 봉사단원들은 알록달록하고 헐렁한 옷가지들과 그 밖에 생활용품들을 쌓아 놓고 줄을 지어 서있는 피난민들에게 한 가지씩 나누어 주기도 하고, 교회 마당에서 커다란 통에 우유죽을 끓여 주기도 하였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던 어느 날, 아이들은 줄지어 기차 길 건너 마을에 새로 생긴 학교로 선생님을 따라 갔다. 새로 지은 작은 학교에는 학용품과 장난감이 쌓여 있었고, 미국인들은 손에 집히는 대로 그것들을 아이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때 소녀가 받은 것은 노란 연필 한 자루와 인형이었다. ‘나에게 이런 선물이 주어지다니~’ 인형을 받아든 소녀는 기쁨에 숨이 막히고 어지럼증이 일어 졸도할 것만 같았다.
그런 인형이었다. 동갑내기 고모가 한 번만 안아 보자고 해도 안 주었던 인형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쩟’하고 혀 차는 소리엔 거역 못할 위엄이 있었다. 그 순간엔 인자한 할아버지가 아니고 어린 소녀에겐 무서운 존재이기만 하였다. 소녀는 인형을 버리기 전에 옷만이라도 갖고 싶었다. 꽃무늬 원피스와 작은 팬티가 벗겨지고 알몸만 남은 인형을 비스듬히 서있는 바위 밑에 가만히 놓아두었다. 돌아 올 때 다시 찾으리라 생각하면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저를 버리는 소녀를 보지 않으려는 듯 알몸의 인형이 긴 속눈썹을 내리 깔고 눈을 감는다.
그러나 돌아오던 날 소녀가 바위 밑에 손을 넣고 아무리 이리저리 휘 저어 봐도 인형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소녀는 엄마가 되어 그의 아이들에게 눈감는 서양인형이 아니라 헝겊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인형을 만들어 주었다. 미군부대 주변에 살며 쵸컬릿과 달콤한 과자와 일찍부터 소시지와 햄에 입맛을 들였으면서도, 그의 아이들에게는 영양 빵과 연탄난로의 오븐에 쿠키를 구워 먹였다. 이제 어른이 된 그의 딸들은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인형과 과자를 그리워하며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어린 소녀였던 55년 전 추운 크리스마스에 바위 밑에 숨겨 두었던 인형을 그리워한다. 알몸으로 버려두었던 것을 생각하며 옷을 그냥 입혀 둘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얼마나 추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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