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강 이야기

꼬마 괴물과 서울 나들이

예강 2007. 9. 8. 22:28

       꼬마 괴물과 서울 나들이



  내 손자 녀석은 이제 만 5년 3개 월 된,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녀석입니다. 영어 유치원엘 다니는데, 제 누나보다 영어를 조금 더 잘 한다고 엄청 잘난 체를 합니다.


  채영이가 치과에 가는 날, 마침 유치원이 쉬는 날이어서 같이 데리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제 어미가 데리고 가지만 혼자서 감당 할 수 없어서 내가 ‘애보기’로 따라 나섰습니다. 버스 안에서 하도 조잘대며 물어 보는 것이 많기에, 강제로 재워서 서울까지 갔습니다. 길을 걸을 때는 녀석의 손을 꽉 움켜쥐고 가야 합니다. 살짝 잡고 가다가는 손을 빼내서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울 대학 병원 치과병동에서 녀석하고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좀이 쑤시는지 가만있지를 못합니다. 자판기에서 뺀 캔 음료수를 먹다가

 “누나도 줘야 하니까 이만큼 남겨야 돼, 할머니”

  지가 다 마셔도 모자랄 텐데 기특하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 먹어도 돼. 누나는 할머니가 또 사 줄게”

“할머니 이거 600원인데 또 사두 돼?”

“걱정 마 할머니 돈 많아”


  치료가 끝나고 제 어미가 수납하는 동안, 녀석은 대기표를 자꾸 뽑아냅니다. 나쁜 짓이라고 했더니, 그게 지 ‘아이템’이라네요. 아이템이 뭔지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건지. 아이와 내가 실갱이를 하는 동안, 수납을 하던 제 어미가 치과로 수납창구로 왔다 갔다 하더니, 열을 내고 나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수납창구 여직원이 너무 밥맛없게 굴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19만 얼만가 하는 치료비를 200만원이나 내라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목소리와 표정에 아무 감정도 없이 지극히 사무적으로, “맞습니다.”하고 한마디만 했답니다. 우리 딸이 다시 아니라고 20만 원 정도 밖에 안 될 거라고 하니까, 역시 무표정하고 높낮이도 없는 목소리로 “내말이 맞습니다.” 하고 또 한마디 밖에 안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이층 치과에 갔더니, 그곳의 직원은 친절하게 다른 사람 계산을 잘못 기재 한 거라고 하며 미안해했습니다. 다시 수납 창구로 가서 치과에서 잘못 기재한 거라고 했는데도, 냉랭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카드 다시 주세요.” 그 한 마디 뿐이었습니다. 착한 우리 딸, 속 터져 죽을 뻔 했으면서도 그 여자에게는 한마디도 못하고 밖에 나와서 열을 냅니다. 그래서 병원을 나오며 내가 벼라 별 욕을 다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 여자가 듣지는 못했지만요. 


  인사동에서 구경을 하며 사위의 퇴근 시간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호기심 많은 꼬마 녀석 지하철을 타고도 가만있지를 못합니다. 다른 집 애들이 공공장소에서 말썽 피우는 거 보면서, 요즘 젊은 부모들은 제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다고 흉을 봤었는데, 그게 아니네요.

“너 인간인 거 맞냐?”

 하고 물으면

“나 인간이야”

“넌 인간두 아냐, 괴물이야”

 그러면

“할머니가 괴물이야”

 하고 덤빕니다.


  요만 때 아이들은 다 그런가 봅니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엄마 따라 내리지 못한 아이가 세상이 떠나가라 하고 발버둥 치며 우는 걸 보기도 했고, 엄마만 타고 아이가 미처 타지 못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기관사가 다행히 맨 끝 쪽 차량에 아이를 태웠으니 그리 오라고 방송하는 것도 본적 있습니다. “눈 깜짝 할 사이”라는 말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일이 많이 있겠지만, 가장 적절한 것은 유아들의 행동입니다. 오죽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라고 할까요.


  인사동 쌈지길을 올라가면서 “만지지 마라” “가까이 가지마라” 입이 닳습니다. 손을 잡아끌며 “으이구, 이 웬수”하면 “할머니 바보” 하고 금방 반격이 옵니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아이를 잃어버리기 쉽고 어린이 공원에서 특히 아이를 많이 잃어버린다고 나와 제 엄마가 하는 소리를 듣고, 녀석은 어린이 대공원에 가자고 졸라 댑니다. 말썽쟁이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딸이 말했습니다. 요즘 영국에서는 엄마와 아이를 연결해서 데리고 다니는 끈이 있다는데, 그곳에서 살다 온 젊은 주부들은 한국에 올 때 가지고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와 엄마가 끈으로 연결해서 다니는 걸 보고 비인간적이라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하이고~ 아직 인간이 덜 된 녀석들에게 비인간적은 무슨 비인간적”

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인간이 왜 아니겠습니까. 아직 때 묻지 않은 천사 같은, 가장 고귀한 인간이지요.


  앞뒤로 짱구인 녀석은 태권도로 단련된 날렵한 몸으로 나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할머니에게 덤비는 불효막심한 녀석은 천하에 제일 나쁜 짓을 하는 놈"이라고 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울어 댑니다.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달래면, 눈물범벅 코 범벅인 얼굴을 내 옷에 비벼대며 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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