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래된 집

예강 2007. 9. 6. 22:30

오래된


  얼마 전 ‘찬 우물’이 있는 마을에 간일이 있다.

 동네 한 가운데 있는 샘물은 표주박으로 떠 마시지 않고, 수돗물처럼 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도록 모터를 연결해 놓았다. 차고 맑아 물맛 좋기로 인근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곳은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개성으로 쳐들어 왔을 때, 고려의 현종이 미복차림으로 이 마을로 피신해 와 있다가 돌아간 후, 그것을 기념하여 지은 ‘용상사’라는 절이 있는 마을이다.

  그런데 우물 근처 새로 지은 건물들 옆에 삐뚜름히 쓰러져 가는 집이 한 채 있었다. 넘어질 듯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울타리 너머로 기웃이 들여다보다가, 문짝도 없는 빈 집으로 들어섰다. 손 바닥만한 마당에는 풀이 무릎까지 올라오도록 우거져서 발을 옮기기도 어려웠다. 마당과 마루에 남아서 나뒹구는 세간들이, 바스라 질 듯 퇴락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안방 부엌 아궁이는 시커먼 그을음으로 얼룩덜룩 하고, 건넌방 연탄아궁이는 아직 연탄재가 들어있었다. 뒤란까지 한 바퀴 돌아보았다. 

  도시는 물론 시골 소읍만 해도 높은 아파트가 여기저기 들어서서, 주위의 산들이 모두 가려지고, 냇물과 하늘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시골집이라도 겉모습도 아름답고 구조가 편리한 입식주택이다. 새로운 건축물은 크건 작건 사용하기 편하고 아름답게 변해 가는데, 그런 중에서도 오래된 집들이 남아 있어서 여행 중에 그런 집을 발견하면 눈여겨보게 되고, 사진을 찍어 오기도 한다.

  양옥이 보편화되고 아파트가 많아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집들은 한옥이거나 한옥의 변형된 형태였다. 기와나 초가는 양철이나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흙과 나무로 지었던 벽은 시멘트로 개량되었다. 그 때 지은 집들은 견고하게 지은 주택이 아니고 대부분 전쟁 후 급하게 지어서, 지붕이 새거나 벽이 헐어 몇 년에 한번씩 수리를 하면서 살아야 했다. 

 의식주 중에도 집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쟁 후 어려웠던 시절에 집을 가질 능력이 없던 사람들은 셋방살이를 하기도 하고, 더러 움집을 짓고 살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한 친구의 집은 개울 옆 둔덕을 이용해서 만든 움집이었다. 처음 그 친구 집에 갔을 때는 땅속에 집이 있는 것이 퍽 신기했다. 친구가 창피해 하며 자꾸 잡아끌었지만, 창이 없어 어둠침침한 방을 기웃거리며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그 후 무악재에서 다시 움집을 보게 되었다. 그 때는 서울에서 파주를 오가는 버스정류장이 홍제동에 있었는데, 버스를 타러 가다보면 무악재길 옆에 산이 있고, 그 산비탈에 굴이 하나 있었다. 굴을 집 삼아 사람이 살고 있어서 때때로 가마니로 만든 거적문을 들치고 드나드는 게 보였다. 지금도 무악재를 지날 때면 거적문이 달려있던 자리가 저기쯤이었던가 하고 두리번거린다.

 오래된 집은 이렇게 낡고 헌집만 있는 건 아니다. 역사의 인물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고택을 잘 보전해 놓은 곳이 있고, 유배생활을 했거나 잠시 머물던 곳을 복원해 놓기도 하는데, 복원해 놓은 집은 별 의미가 없다. 외국에도 음악가가 살던 집이라던가, 작가의 집이라고 해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작가가 살던 집과 쓰던 물건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다.  그러고 보면, 집은 단지 생활의 공간만은 아니다. 그 집에서 살던 사람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역사를 이루고, 생명의 흐름이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얼마 동안은 몇 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다. 아이들이 하나 둘 씩 태어나고 세간살이가 늘어나면서 추억도 쌓이게 마련인데, 이사를 하면 그 집에서 있었던 추억을 그냥 두고 가는 것처럼 늘 서운했다. 먼저 살던 집 앞을 지나갈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 눈에 띌세라 대문 문틈을 기웃거리거나, 혹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닫힌 창문을 바라보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주 작은 그리움 한 조각이 비늘처럼 떨어져나가며 가슴이 시렸다. 그 집에서 살았던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온 것처럼 한동안 그리워하며, 예방주사 맞고 앓는  홍역처럼 약한 향수병을 앓곤 하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는 20여 년을 살았다. 여러 번 수리하고 개조하여 살지만 아파트처럼 편리하지 못하다. 불편한 점이 많고 단열이 잘 안돼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그러나 이 집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고, 결혼하고 독립해 나갔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등단을 한 것도 이 집이고, 남편이 내 곁을 무심히 떠난 것도 이 집에서이다.

아이들은 제발 이사하라고 성화이고, 나도 언젠가는 불편한 이 집에서 옮겨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이사를 하고 나면 아마 열병을 치르게 될 것이다. 얼마나 심하게 아플까,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하게 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아직도 나는 어디서든 오래된 집을 보면 마음속에 있던 유년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안개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가슴 한 구석을 간질이며 노곤한 환각에 빠져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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