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거리
“끼~익, 철커덕.”
녹슨 철 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불쑥 그 여자가 들어섰다. 한 여름 뙤약볕에 그을린 얼굴과 검정색 낡은 옷이, 마치 시커먼 덩어리가 굴러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마당에서 물장난하던 두 아이는 겁먹은 눈으로 내 치맛자락을 잡고 등뒤로 숨는다.
남루한 차림새의 그 여자를 처음 본 것은, 연년생인 두 아이를 키우느라 집안에서만 종종거리던 때이다. 둘째 아이의 기저귀며, 흙장난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 입혀야 하는 큰애의 빨래로, 매일 마당 수돗가에서 떠나지 못하고 살았다.
그 시절엔 한적한 시골뿐 아니라 소읍에만 살아도 웬만한 집들은 대문을 잠그지 않고 지냈다. 수돗가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밤이 되기 전에는 대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는데, 그 여자는 그런 우리 집 대문을 제집인 양 밀어젖히며 들어선다. 초라한 행색으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주춤주춤 들어서는 그의 꼴은 감지 않은 머리가 북데기처럼 헝클어지고, 더운 여름에도 옷을 잔뜩 껴입었는데 허리에 보따리를 둘러메고 한 손에 보따리 하나를 더 들었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웅얼거리며 구걸을 하면, 나는 쌀통에서 한 공기의 쌀을 퍼서 그가 벌이는 자루에 쏟아 부었다. 쌀을 받아 들고서야 그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웃음이 벙긋 벌어지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은 아프리카 흑인처럼 까맣게 빛났다. 그 여자는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더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내가 한 공기의 쌀을 퍼서 건네주면 윗입술을 올려 하얀 이를 드러내곤 하였다.
그 여자가 사는 곳은 3km쯤 떨어진 이웃 마을이다. 동네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나타나, 언제나 같은 행색으로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먼 거리의 두 마을을 넘나들며 바쁜 기색도 없이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 여자가 지나가는 광경은 원색의 간판과 상점에 진열된 말끔한 상품들 사이에서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한 쪽 다리를 지척이며 걸어가는 길 위로,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려도 그는 마냥 걷는다. 눈 오는 겨울날엔 그의 어깨에 눈이 내려 앉아 검은 옷 위에 하얗게 덮이고, 낙엽 지는 가을날엔 바람에 실려 온 가로수의 낙엽이 빗질하지 않은 머리 위를 꽃잎처럼 장식하기도 하였다. 어느 계절이나 그 여자는 한 그루의 가로수처럼 거리에 있었고, 계절이 몇 번이 지나도록 그 거리를 떠돌았다.
한결같이 보따리를 허리에 둘러메고 다니는 그를, 사람들은 ‘보따리 거지’라고 불렀는데, 그 때 그 여자에 대한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어느 부잣집 며느리였다고도 하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여 시부모에게 쫓겨났다고도 하고, 바람난 남편 때문에 실성하여 거리를 떠돌고 있다고도 했는데, 실성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아서 그 진위가 확실치 않았지만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지 모르는 여자로 떠도는 것보다는, 근본이 있는 사람의 극적인 인생살이가 더 드라마틱하니까.
그 후로 오랫동안 길에서 그 여자를 만나지 못해 죽었으려니 생각했다. 험하게 살다 보면 병이 들었을 수도 있고, 거리를 떠돌다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으니. 그런데, 며칠 전 그가 사는 마을을 지나가다 그 여자가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있던 여자의 출현에 다소 놀라, 운전하던 차를 잠깐 멈추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기까지 하였다. 그 여자를 못 본 것이 근 20여 년이나 된 것 같은데, 여전히 그 거리에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어서 확인을 해 본 것이다. 다시 보아도 그 여자가 분명하였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세월의 풍화에는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옷차림새와 보따리를 둘러 맨 것까지 변하지 않고 있었으니, 참 알 수 없는 게 세상이치 아닌가. 그 여자에게 변한 것이 있다면, 차가 많지 않던 예전에는 넓은 길을 여유롭게 걸어 다녔는데, 지금은 차 사이를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가 사는 것이 궁금하여 그 마을에 사는 사람에게 그가 사는 곳이 어딘지, 가족은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언덕빼기 허술한 집에 혼자 살며, 가족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다. 평생을 구걸하여 돈을 꽤 모았지만, 그것마저 동생이 와서 빼앗아 가 버렸다는 소문이다. 그 여자의 나이는 일흔 살쯤이며, 실성한 것이 아니라 지능이 좀 모자라는 편이라고 하고, 구걸을 하지 않는 날은 마당에서 빨래를 하기도 하고 살림도 제법 잘 한다고 하였다. 집에 있을 때는 깨끗한 옷을 입고 있다가, 구걸을 나올 때는 헌 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하니, 지능이 아주 모자라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지하철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기는 했어도, 요즈음엔 그 여자처럼 집집마다 다니며 문전걸식하는 걸인은 없다. 몇 십 년 동안 변하지 않고 그 모습대로 구걸하는 그를 고전적 걸인이라 할까.
그 여자의 드라마틱한 인생유전의 환상이 깨어져 버리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내 기준의 상상이고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언제나 그 거리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