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고죽국 유적
갈석산으로 가는 길에 고구려 성으로 추정하는 영평성의 서문으로 들어가, 성의 모양을 살펴보았다. 지금은 벌판과 밭이 있는 성 밖이, 예전엔 강이 있어서 ‘난하’가 범람하면 물이 들어와 물을 막기 위한 해자가 성 둘레에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성의 특징은 성 앞에 치가 설치되어 있고, 안쪽으로 이중 구조로 또 하나의 성문이 있다. 성문은 5~6m 쯤 길이의 터널처럼 되어 있고, 터널 가운데엔 물막이용 문의 돌쩌귀가 보였다. 성문 위에 북경을 바라본다는 뜻의 경망京望 이라는 글자가 써 있다. 성문 앞 성벽에도 뭔가 글자가 새겨 있기에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발밑에 더러운 오물들이 나뒹굴며 냄새를 풍겼다. 이런~ 벼니糞.
천고신악 갈석산
백이숙제의 유적지와 고구려성, 그리고 갈석산이 있는 곳까지 고죽국 유적지이다. 그곳엔 조선 사람이 살았고 조선지명이 남아 있는 곳으로 모두 영평부에 속해 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갈석산이 있다. 갈석산 입구로 가는 길 왼쪽 가까이에, 바위로 된 산이 보인다. 갈석산 입구로 가는 길 따라 굽이굽이 한참을 달려가도 갈석산은 계속 이어져 있어, 그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뚜렷이 표시가 나기 때문에 갈석산을 지표산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갈석산은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의 시작점이기도 하며, 중국의 아홉 황제가 방문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참고 : 창여의 천고신악 갈석산碣石山
고조선 수도에 한나라의 식민 통치 기관인 낙랑군樂浪郡을 설치했는데, 그 다리가 현재의 평양 일대라는 것이다. 현행 고교교과서도 고구려가 평양에 있던 낙랑군을 몰아낸 후 남쪽으로 진출했다는 식으로 ‘낙랑군=평양’을 전제로 서술하고 있다. ‘낙랑군=평양’ 설은 1913년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가 처음 주장한 것인데, 해방 후에 이병도 교수가 ‘신수新修 한국대사관(1972년)’ 같은 책에서 계속 이를 지지하면서 현재까지도 정설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기史記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는 “낙랑군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수성현과 갈석산을 찾으면 낙랑군의 위치는 저절로 밝혀진다. 이병도 교수는 ‘낙랑군고’에서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에 비정했다. 이는 수성과 수안의 ‘수遂’자가 같다는 지극히 소박한 이유에서였지만 현재도 어떤 학자들은 이 학설을 무작정 따르고 있다. 하지만 수나라 정사인 ‘수서 지리지 상곡군 조는 수성현이 창려군과 같은 지역이라고 전하고 있다. 낙랑군 수성현이 수나라 때는 창려군으로 개명했다는 뜻이다.
(참고 : 고조선유적 답사회 이형석)
북대하
갈석산에서 50여분 쯤 달려 진황도로 가는 길에 중국의 유명한 휴양지 북대하를 지나게 되었다. 경京자 번호판을 단 고급 승용차들이, 휴양지로 가고 오는 길에 줄을 이어 달리고 있어서 길이 막히고 빨리 갈 수 없었다. 경자 번호판은 북경에서 온 차들이다. 북대하는 온도가 적당한 곳으로 중국의 문화개방이후, 이태리 대사가 제일 먼저 발견하여 별장을 지었다. 그 후 각 나라 대사들도 별장을 짓고 피서지로 이용하였고, 중국 군벌들이나 재벌들도 앞 다투어 별장을 지었다. 북경의 기온이 34도일 때, 북대하는 28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피서지로는 적격인 곳이다. 지금 그곳에는 양로원을 100여개 쯤 지어 놓고 노인들의 수양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피서 온 외국인 젊은 남녀가 몸을 많이 드러낸 옷을 입고 지나갔다. 여기에 오는 외국인은 러시아인이 가장 많다고 하였다.
호텔로 가는 길목에 진행궁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너무 어두운 시간이어서 잠시 내려서 보고 차에 올랐다. 이곳은 왕검성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진시황이 답사한곳의 마지막 경계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당시에 이곳이 중국 땅이 아니었다고 한다.
길고 긴 여정에 저녁 식사가 늦어졌다. 밤 10시가 다된 시간에 밥을 먹었다. 작년에 중국의 남쪽을 다녔던 기억으로는 음식이 너무 기름지고 향이 강해서 먹기 힘들었는데, 북쪽의 음식은 먹을 만 했다. 모모와 배정된 방으로 들어와 씻으려고 하니 샴푸만 있고 린스가 없다. 파마에 염색에 스프레이로 망가진 머리칼을 린스 없이 워쪄. 그깟 린스 몇 푼이나 간다고~. 투덜대며 샴푸로만 벅벅 문질러 감고 머리를 손질하려니까 헤어드라이가 작동 되지 않는다. 너무나 난감해서 망연히 앉아 있다가 찍찍이 컬로 말아서 고정시킨 머리에 부채질을 해댔다. 이런~ 대체 이게 뭔 짓이야. 그래도 고단한 밤은 잘도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