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문자 메시지 스트레스 )
요즈음의 편지는 전자 메일이나,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대신하고 있다. 우편으로 오는 것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은 거의 공문서이거나, 광고지이고 소식을 전하는 편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 시간도 쪼개 쓰는 현대인들에겐 며칠씩 걸리는 편지보다, 단축키 하나로 두 공간을 이어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직접 쓴 편지가 드문 시대이니, 40여 년 전 펜팔로 받은 편지는 귀한 골동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에 대학생이던 그 편지의 주인공은 문학 지망생이기도 했는데, 문체가 펵 고답적이었다. 이제는 그런 문체의 글을 찾을 수 없으니 더욱 귀한 것이 되었다.
어렸을 때 친구와 주고받던 편지는, 지금 돌이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순수한 마음이 들어있는 글이었다. 매일 학교에서 만나면서, 말로 해도 될 일을 편지로 써 주면 더 진지해지고 어른스러워 진 것처럼 의젓했다. '나의 영원한 벗'이니 '변치 않는 우정'이니 하면서 자못 심각한 투로 썼으나, 형편에 따라 이리저리 헤어지고, 영원이니 변치 않겠다느니 하던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산다. 그러나 생활에 매여 잊고 살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편지를 주고 받던 그 시절의 친구들이다.
1558년부터 퇴계 이황선생과 고봉 기대승이 13년 동안 주고받았던 편지가 있다. 나이와 직위를 초월하여 영혼의 교류를 했던 대학자와 청년학자의 편지는, 지식을 추구하며 자기 완성을 위한 치열함이었다. 한동안은 사단칠정 논쟁을 하는 편지로 이어 졌으나, 퇴계가 논쟁은 이젠 그만하자는 요청을 하고 고봉이 그 의견을 따라 주어, 퇴계 이황 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 학문과 일상적인 내용의 편지로 이어졌다. 26년의 나이차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유학자답게 상호 존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던 두 사람의 교류가 부러워 지는 요즈음의 심정이다.
단체를 움직이는 곳에서는 공문서를 보내야 할 때가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한 장의 문서를 만들어 몇 장이든 원하는 만큼 복사하여 단체의 회원들에게 보낼 수 있다. 그 보다 더 편리한 방법이 있다. 웬만하면 거의 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이용하여, 우표를 붙이는 수고도 안하고, 우체국에 가야하는 번거로움도 없이, 일시에 같은 내용을 보낼 수가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돈을 전혀 들이지 않고 사용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방법을 배우기는 하였으나, 사용할 일이 없으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나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릴 만큼 인사치례를 잘한다. 더구나 신년이 되면 서로 덕담 한 마디씩은 꼭 해야 사람노릇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덕담을 들었다고 해서 복이 굴러 들어 오는 건 아니지만, 들어서 기분 나쁠 것은 없는 말이다. 신년이 되거나 크리스마스가 되거나 축하할 만한 명절이 되면, 축하의 인사들을 해 온다. 내가 인사를 하기전에 먼저 문자로 인사를 해 주니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런 인사 말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어불성설이라고 할까.
명절이 되면 2~3일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축하 한다느니 복 많이 받으라느니 하는 메시지가 쉴 사이 없이 오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문자가 오는 빈도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어서 참 편리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며, 먼저 인사해 준 것에 고마워 하고, 내가 먼저 하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며, 정성껏 답장을 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내오는 문자 열어 보고, 답장 쓰다 보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렇더라도 나에게만 보내 준 문자였다면 기꺼이 받고 정성껏 답장을 해 줄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이름 없이 전화번호만 있는 메시지를 보내 올 때도 있는데, 전화 번호만 가지고는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편지가 나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정성이 깃들지 않은 공문서처럼 한 장의 편지를 동시다발로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편지의 문구가 내 생각만을 하면 서 쓴 것이 아니어서 차별화된 특성이 전혀 없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한 귀퉁이에라도 내 이름을 거론 한 곳이 없다.
밤12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까지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더욱 기가 막힌 건 새벽 5시 쯤 울린 머리맡의 핸드폰 속 문자메시지 주인공이다. 자다 말고 답장을 쓸 수 없어, 아침밥을 먹고 의례적인 인사로 문자를 써 보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메시지를 보낸 분이 누구시냐고....내가 이름을 안 쓰고 보냈기로, 내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으면서 누군줄 모르다니....
명절이 아닐 때 문자메시지를 보내오는 이들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알맞은 내용과 관심을 표한다. 그런 이들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고, 나도 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편지지에 편지를 쓰던 시대엔, 고향집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며 제일 위 가운데에다가 글의 제목처럼 '부모님 전상서' 라고 썼었다. 친구에게 쓸 때는 '나의 영원한 벗 아무개에게' 라고 쓰고, 연인에게는 연인대로 걸맞는 호칭을 붙였다. 그때로 돌아 갈 수는 없겠지만, 문자 메시지라도 정성이 있고, 개별적인 애정이 들어 있는 내용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