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 柳枝에게>
어허! 황해도에 사람 하나
맑은 기운 모아 신선자질 타고 났네
뜻이나 태도나 곱기도 할 사
얼굴이나 말소리 맑기도 하이
새벽하늘 이슬같이 맑은 것이
어쩌다 길가에 버렸던고
봄도 한창 청춘의 꽃 피어날 제
황금 집에 못 옮기던가, 슬프다 일색이여
처음 만났을 젠 상기 안 피어
장만 맥맥히 서로 통했고
중매 설 이가 가고 없어
먼 계획 어긋나 허공에 떨어졌네.
이렁저렁 좋은 기약 다 놓치고서
허리띠 풀 날은 언젤런고
어허! 황혼에 와서야 만나다니
모습은 그 옛날 그대로구나
그래도 지난 세월 얼마나 갔는지
슬프다! 인생의 녹음이라니
나는 더욱 몸이 늙어 여색을 버려야겠고
세상 정욕 재같이 식었다네.
저 아름다운 여인이여!
사랑의 눈초리를 돌리는가.
내 마침 황주 땅에 수레 달릴 제
어찌 알았으리. 어여쁜 이, 멀리 따라와
병들자 내 방문 두들길 줄을
아득한 들 가에 달은 어둡고
빈 숯에 범 우는소리 들리는데
나를 뒤 밟아 온 것 무슨 뜻이뇨
옛날의 명성을 그려서라네.
문을 닫는 것 인정 없는 일
같이 눕는 건 옳지 않은 일
가로막힌 병풍이사 걷어치워도
자리도 달리 이불도 달리
은정을 다 못 푸니 일은 틀어져
촛불을 밝히고 밤새우는 것
하느님이야 어이 속이리.
깊숙한 방에도 내려와 보시나니
혼인할 좋은 기약 잃어버리고
몰래 하는 짓이야 차마 하리오.
동창이 밝도록 잠자지 않고
나뉘자니 가슴엔 한만 가득
하늘엔 바람 불고 바다엔 물결치고
모래 한 곡조 슬프기만 하구나
어허! 내 본심 깨끗도 할 사
가을 물위에 찬 달이로고
마음엔 선악싸움 구름같이 일적에
그 중에도 더러운 것 색욕이거니
사나이 탐욕이야 본시부터 그른 것
계집이 내는 탐욕 더욱 고약해
마음을 거두어 근원을 밝히고
근본으로 돌아갈지라.
내생이 있단 말 빈 말이 아니라면
가서 저 부용성에서 너를 만나리.
<다시 짧은 시 3수를 써 보인다>
이쁘게도 태어났네, 선녀로구나
십 년을 서로 알아 익숙한 모습
돌 같은 사내기야 하겠냐마는
병들고 늙었기로 사절함 일세
나뉘며 정든 이같이 설워하지만
서로 만나 얼굴이나 친했을 따름
다시 나면 네 뜻대로 따라 가련만
병든 이라 세상 정욕 찬 재 같은 걸
길가에 버린 꽃 아깝고 말고
운영이 처럼 배항이를 언제 만날꼬
둘이 같이 신선될 수 없는 일이라
나뉘며 시나 써주니 미안 하구나
1583년 9월 28일 병든 늙은이가
‘밤고지’ 강마을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