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일본 여행기

예강 2006. 11. 12. 22:11
 

  일본 여행기


                                                                       

 10월 26일

  아침 9시경, 인천 공항에서 하늘 위로 오른 JAL기는, 구름을 발아래 두고 나리따 공항을 향해 날았다. 운 좋게 창가에 앉게 된 나는, 비행기의 이동 속도만큼 변화하는 구름을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사진에 담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일본 열도가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며,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섬나라의 지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푸른 산의 나무도 보이고 강물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강줄기는 뱀처럼 유연하게 굽어 흐르고, 잘 정리된 논밭은 바둑판처럼 자로 잰 듯 반듯 반듯 했다.

  

  12시가 넘어 공항 부근의 식당에서 뷔페식의 점심을 먹고, 하다노시로 가기 위해 전용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다노시로 가려면 동경을 거쳐 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야한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일본은 배로 물품 수송을 하기 위해 물류항(物流港)이 발달한 아름다운 항구 도시가 많은 나라이다. 동경 시내를 관통하여 동경과 나고야를 잇는 도메이(東明)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동경만(東京灣)의 물류센터가 한눈에 들어오고 커다란 크레인선과 컨테이너가 산재해 있는 것이 보인다. 요꼬하마는 동경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일본 최초로 서양에 개항한 항구도시로, 외국인들에 대해 관대하고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이어 요꼬하마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이드를 맡은 사람은 여행사의 부장으로 일본에서 몇 년간 유학하여 일본어가 유창하고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가이드 권 부장의 설명을 들으며 하다노시에 도착 하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하다노시는 인구 십육만 팔천여명이 사는 작은 도시로 집들은 나무로 지은 작은 이층집이 많았다.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길에 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감이 잘 되는 지역인지 아직 따지 않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집 주위에 많았다.

 

  하다노시는 파주시와 교류협력관계를 맺은 도시로, 이번 여행에는 환경위생조합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버스에서 설명해 주는 분이 청소공장이라는 말을 자주 써서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가보니 한자로 청소공장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관계자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청소공장의 내부를 둘러본 결과, 파주시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보다 뒤 떨어지는 시설이었다. 그곳의 소각장은 30 여 년 전에 설치한 것이어서 시설이 낡았지만, 우리가 쓰레기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그런 시설을 만든 것에 감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낡은 기계로 쓰레기를 소각하면 다이옥신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그곳 주민들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한다. 안한다기보다 못한다고 해야 하겠지만, 전체 인구 중 상당수가 시청 직원이고 시민들이 서로서로 연결되는 친척 관계이기 때문에 잘못된 시정을 성토하지 못하고, 또 관료적 성향의 지역이어서 시민운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다노시 위생조합에서 나와, 몇 개월 전 파주시를 방문했던 하다노시 교류협력회에서 초대한 만찬장 이찌노야(一屋) 음식점으로 갔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고 나온 시민들은 지난번에 만났던 사람들이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일본 음식을 먹으며 몇 사람 건너 중간 중간에 끼어 앉은 통역을 통해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들은 일본 전통 공연을 준비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었는데, <아끼따 다이고꾸> 라는 춤을 보고, 그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연주자 ‘기꾸지 도모시로’가 연주하는 <쓰가루 사미션>을 듣고, 노래와 연주 춤 등을 감상 하였다. 마지막에는 서로 작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손을 잡고 어울려 춤을 추었다. 우리는 호텔이 있는 요꼬하마로 가야하기 때문에 떠나려는 버스 옆에서 마냥 손을 흔들며 섭섭해 하는 그들을 두고 그곳을 떠났다. 

 

  낮에 지나쳐 왔던 요꼬하마로 다시 돌아가, ‘사쿠라키쵸워싱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사쿠라끼쵸 전철역 옆에 있는 호텔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항구 도시 요꼬하마의 야경이,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화려하고 물위로 쏟아지며 반사된 빛의 반짝임이 여행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요꼬하마의 밤 문화를 보려던 계획은, 온 종일 비행기와 버스에 시달려 고단하기도 했거니와 공항에서 사 두었던 감기약을 먹고 취해 그냥 잠이 들고 말았다. 요꼬하마의 밤 문화는, 그날 밤거리 체험에 나섰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9월 27일

  다음날은 요코하마市 경제 관광국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어서 조금 늦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였다. 다른 일행들이 식사하는 동안 5층 로비에 앉아서 창밖으로 사쿠라키쵸 역에서 나와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기차에서 내려 바쁜 걸음으로 직장으로 가는 사람들의 차림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후인데 대부분 어두운 색을 많이 입고 있었다.

 

  요꼬하마 시 경제 관광국을 방문하기로 한 시간은 10시 30분이었다. 우리는 책상을 앞에 놓고 작은 회의실 에 앉아, 경제교류추진과 담당자가 나와 요꼬하마 시의 관광 정책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2009년이면 개항 150주년이 된다는 요꼬하마는 관광객들이 잠깐 왔다 가는 도시가 아니라, 머무는 도시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였다. 지금까지는 관광객들이 도꾜를 거쳐서 왔다가 잠깐 들리는 곳이었으나, 앞으로는 요꼬하마에 왔다가 요꼬하마에서 떠나는 관광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관광객을 위한 정책이지만 요꼬하마 시민이 만족할 수 있는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살고 있어서 좋고 방문해서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피력하였다. 관광국 담당자는 요꼬하마 시의 성공적인 관광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약 기운에 맥을 못 추고 깜빡 깜빡 졸고 있던 나는, 밖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에 정신을 차려야 했다.

 

  다음 일정은 하꼬네로 이동하여 버스로 후지산 중턱의 오합목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후지산으로 가는 도로 옆으로는, 은빛 깃털을 바람에 날리는 넓은 억새밭이 줄을 이으며 우리의 시선을 따라 오고 있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그림처럼 아름다운데, 한참을 달려가다 보니 후지산의 만년설이 눈으로 들어 왔다. 백두산의 천지를 보기 어려운 것만큼 후지산의 만년설을 보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는데, 운 좋게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만년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창에 카메라를 대고 후지산 봉우리의 하얀 눈을 찍었다. 약 1000만 년 전부터 반복 분화하는 성층 구조를 가진 후지산에는, 나무와 물이 없고 따라서 새도 살 수 없다고 한다. 후지산은 7~8부 능선까지만 등산이 가능하고, 관광객은 오합목 휴게소에서 하차하여 산을 볼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만년설이 사라지기 전에 단체 사진을 찍고 올려다보니, 그사이 안개가 몰려와 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동하는 시간이 워낙 길기도 하였지만, 아침부터 늦게 시작한 오늘의 일정은 후지산에서 내려와 하꼬네 국립공원의 ‘아시노’ 호수에 들렸을 때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해발 760m인 산 중턱에 있는 ‘아시노’ 호수에서 해적선을 타 보려던 계획은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이미 승선 시간이 끝나 포기하고, 와쿠다니계곡(지옥계곡)으로 향했다.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몰라 ‘지옥계곡’이라 부르는 계곡이 가까워 오자 특유의 매캐한 유황 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산 여기저기 어둠 속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두운 길을 더듬거리며 올라가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뜨거운 유황온천물에 손을 씻으며, 어둠속에서 짐작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동경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뷔페식 일본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의 옆자리에는 회식하는 일행이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에 앉아 시끌벅적하였다. 나는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저녁 시간을 즐기는지 궁금하여 밥을 먹으며 옆자리의 회식일행을 유심히 살폈다. 한 부서의 팀원들인 듯 서열대로 나이 차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식사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밥 따로 술 따로 2차 3차를 하는 우리의 회식과는 달라 보였다.

 


  10월 28일

  동경의 ‘신쥬꾸 리스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식사까지 하고 나와, <도죠 궁>이 있는 닛꼬 국립공원으로 향해 일본의 동북간을 잇는 고속도로를 달려가는데, 앞서 가는 두 대의 이층 버스가 보였다. 이층버스는 외관의 색깔도 일반 버스와는 달랐고, 들여다보이는 버스의 천정에서는 색색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그 차는 <싸롱 카>라고 하는데 아래층은 승객이 앉는 의자가 있고, 이층은 ‘스탠드바’로 심부름하는 여자와 도박장 시설을 갖추고, 천정엔 반짝이는 네온이 달려 있다고 하여 일본의 다른 또 문화를 볼 수 있었다. 

 

  닛꼬 국립공원은 10월 말의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닛꼬 국립공원의 <동조궁>은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손자가 할아버지를 존경하여, 하꼬네 근방에 있던 무덤을 닛꼬로 옮기고 금박을 입혀 사당을 지었는데, 지금은 유네스코에 인류문화 유산으로 지정됐다. 동조궁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늘을 찌를 듯 키 큰 삼나무가 마치 사열을 하듯 일렬로 서 있었다. 동조궁에서 특이한 것은 마구간 벽면에 그려진 원숭이 조각이다. 일본에서 원숭이는 말을 지키는 영물이라는데 그 곳의 그림은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 죽을 때까지의 일생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에 유명한 ‘그림은 귀 막고 입 막고 눈 가린 세 마리의 원숭이’로 자랄 때의 지침으로 “나쁜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는 처세술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들어가는 입구에 일주문이 있어서 이상했는데, 원래는 <도오죠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동조궁을 나와 쥬젠지호수와 게곤노타키 폭포를 보러 갔다. 화산이 폭발한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쥬젠지호수는 해발 1000m의 고지에 있었는데, 마침 어둑어둑해가는 하늘의 구름이 호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호수에서 걸어서 게곤노타키 폭포로 갔다. 게곤노타키 폭포는 쥬젠지 호수의 물이 흘러내려 와 폭포를 이루는데, 어마어마한 물줄기가 90m의 길이를 이루며 떨어져 내린다. 폭포를 더 잘 보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구경하고,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어두운 밤길을 달려 동경으로 다시 돌아와, 일본에서의 저녁식사는 한국인 식당에서 일본에 온 후 처음으로 며칠 만에 한국식으로 먹었다. 그 일대는 한국인 식당이 여럿 있었는데 대부분 한글로 간판 이름을 달아 놓았다. 그 중에 <엄니식당>이라는 간판이 인상 깊게 내 눈길을 끈다. 오늘도 역시 밤거리 문화 체험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쉬게 하였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은 점점 꿈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 갔다.

 



  10월 29일

  이른 시간 일본 왕이 사는 황거로 가는데 비가 간간히 내린다. 일왕과 그 일가가 사는 황거의 주위엔 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자(垓字)가 빙 둘러 있었다. 30만평의 넓은 정원엔 잘 가꾼 소나무가 많은데,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1000여 그루나 된다고 하였다. 너무나 잘 가꾸어진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산에서 막 자란 구부러진 소나무만 보던 내 눈에 거부감을 주었다. 넓은 자갈길을 지나 황거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안경모양의 돌다리 <메가네바시(眼鏡橋)>앞에서 더 들어 갈 수 없었다. 일 년에 두 번 신년과 천황의 생일에만 개방한다는데 그때는 많은 일본 시민들이 천황을 보려고 몰려든다고 한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3시 35분 발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일정이 타이트했다. 일본에 온 후 거의 쇼핑을 하지 않아, 아키아바라 전자상가에서 약 1시간 동안 구경하며 필요한 선물을 사기로 하였다. 일행은 모두들 비싸지 않은 것으로 꼭 필요한 선물만 샀다. 다음 들린 곳은 쌀 박물관이었는데, 쌀로 만든 음식, 아토피 피부에 효과가 있다는 화장품 등, 상품을 팔기도 하는 곳이었다. 일본인들은 쌀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며 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긴자 거리에 있는 정통 일식집으로 가는데, 마침 오늘이 긴자 거리에 차 없는 날이어서 버스를 멀리 세워두고 걸어서 번화가를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차도를 마음대로 걸어 다니고, 넓은 도로 여기저기 여러 군데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기모노 입은 차 문화 회원들이 차에 대한 설명을 하고, 차를 마시게 해서 그 표를 받기 위해 서있는 사람들이었다. 동경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긴자거리의 차도를 활보하며, 화려한 상점의 쇼윈도와 일본의 멋쟁이 여인들을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하네다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향해 하늘을 나는 동안 이번 여행의 의미를 되 새겨 보았다. 첫날 만찬장에 함께 했던 하다노시 시의회 부회장이, 옆에 앉아있던 분과 대화중에 ‘지난날 자기들의 조상이 저질렀던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사과 했다’는 말은 들었다. 또 여행하는 동안 일정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간이 늦어지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운전기사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버스기사도 역시 지난날 자기 조상들이 한국에 저지른 잘못을 조금이라도 사죄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한국인들에게 봉사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일본 정부의 고위 인사가 신사 참배와 망언을 하고,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 까지나 개인적인 감정일 뿐, 국가대 국가의 일로 발전 했을 때는 자기 나라의 국익에  해를 입힐까 하여 침묵하고 만다. 이 지구상에 민족주의가살아 있음을 엿 볼 수 있는 계기였다. 젊은 여성이 유창한 일어로 스튜어디스에게 담요를 달래서 내게 주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담요를 어깨에 둘렀다. 기내식으로 주는 일식을 깨끗이 먹고, 커피를 한잔 더 청하여 마시고는 김포에 닿을 때까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