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쓰시마)

5. '하찌만구(八幡宮)'신사와‘이마미야(今宮)’신사

예강 2014. 12. 10. 21:58

5.'하찌만구(八幡宮)'신사와‘이마미야(今宮)’신사

 

 

  이즈하라 항구 가까운 큰길가에 '하찌만구(八幡宮)'신사가 있다. 이즈하라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최익현선생이 처음 구금되어 있던 곳이다. 커다란 ‘도리이’가 대문처럼 서 있는 입구를 들어서 돌계단을 한참 올라가서 신사가 있는데, 이곳의 신사는 그 규모가 다른 곳에 비해 대단히 크다.

 

 

<비운의 여인 ‘고니시 마리아’>

  팔번궁 신사 왼쪽으로 다시 돌계단을 오르면 비극의 여인 <안덕천왕>을 모신 이마미야(今宮) 신사, 일명 마리아 신사가 있다. 이마미야 신사는 ‘고니시 마리아’를 제사지내는 사당 으로 ‘고니시 유끼나가’의 딸이며 19대 대마도주 ‘소요시모토’와 결혼하였다. 고니시유끼나가(小西行長)는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조선에 출병하여 평양까지 침공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기 직전에 제2인자였던 ‘도꾸가와 이에야쓰’를 비롯한 가신들을 소집하여 “내가 죽은 다음에 어린 자식을 잘 보필해 달라.”고 당부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꾸가와 이에야쓰가 정권을 잡으려 하자 히데요시의 막료들이 ‘이시다 미쓰나리’를 중심으로 이에야쓰에 강력히 대항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이에야쓰 군과 히데요시 세력의 미쓰나리군단 간에 ‘세끼가하라(關が原)전투가 벌어진다. 전투가 벌어지자 전국의 다이묘들은 전투에서 어느 편을 들어야할 지 난감했다.

의리로 치면 당연히 히데요시 편의 미쓰나리 군단에 들어야하나 이에야쓰 편의 강력한 군사력을 보건대 전투에서 이에야쓰 편이 이길 것이 뻔한 일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히데요시가 그렇게도 아끼던 ‘가또기요마사(加藤淸正)’는 세끼가하라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세가 우세한 이에야쓰 편에 들어 구마모또성에서 나오지 않아 전후에 이에야쓰의 신임을 얻는다. 반면에 히데요시의 막료로 천주교 신자였던 고니시 유끼나가는 질 것을 알면서도 의리상 히데요시 군단에 가담했다가 참변을 당하고 만다.

 

  세끼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고니시 유끼나가는 참수를 당하고, 유끼나가의 딸을 아내로 삼았던 대마도주 ‘소우요시토시’는 장인 때문에 대마도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사태에 처하게 되자 ‘고니시 마리아’를 내쫓는다. 내 쫓긴 고니시 마리아는 나가사끼로 건너가 죽었다고 한다. 고니시 유끼나가의 딸 고니시 마리아를 이곳 이즈하라 이마미야 신사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대마도인들이 악령의 재앙을 두려워해서라고 전해진다.

 

  이마미야 신사에서 돌아 내려오는 길에는 여러 개의 장명등이 계단 옆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장명등에는 화창(火窓)이 모두 원형과 반원형으로 뚫려 있었다. 파주에 있는 공효공 박중손 묘역의 장명등의 동서 쪽 화창이 원형과 반원형으로 뚫려 있어 일월등(日月燈)으로 우주를 상징한다고 보물 1323호로 지정되었.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며 일월등으로는 유일한 것인 줄 알았는데, 대마도에 있는 장명등은 모두가 일월등이 아닌가. 박중손묘역의 장명등을 만든 장인의 기술이 대마도로 건너 간 것일까. 일본의 문화가 들어 온 것일까. 어찌 된 것인지 연구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