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여행

타이완 여행

예강 2014. 12. 1. 19:46

<타이완의 역사와 문화>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먼저 타이완(대만)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본다. 타이완은 중국 본토로부터 남동쪽으로 160km정도 떨어진 태평양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의 크고 작은 7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으로 한국과 일본, 남쪽으로는 홍콩과 필리핀의 한 가운데 있다. 타이완 섬은 남북으로 394km이고 동서로 144km이며, 중앙에는 대만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 동서로 나뉜다. 국토의 2/3가량이 산지이며 나머지는 산기슭, 평야, 해안평야 등이다. 기후는 아열대성이다.

 

대만의 역사는 2000여 년 전 한시에 처음으로 언급되었고, 1206년에는 몽골 대제국의 정복자 징키스칸이 섭정 하였다. 1624년에는 네델란드가 타이완 섬을 침공하여 37년간 지배를 했으나, 1661년 당시 명나라의 영웅으로 추대 받던 鄭成功이 네델란드를 물리쳐 한족정부가 들어섰다. 그 후 "대만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정성공이 죽자 청나라가 복건성에 편입 시켰다. 19세기말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그 이듬해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타이완과 펑후제도는 일본에 의해 통치되다가 세계 제2차 대전 후인 1945년 다시 중화민국으로 복귀되었다.

 

그 후 1911년 10월 10일 중국 본토에서는 역사적인 신해혁명이 일어나는데, 이 날은 쑨원(孫文)이 이끄는 국민당이 부패한 청나라를 타도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날이다. 중화민국 타이완에서는 이 날을 국경일로 정하고 쌍십절이라 하여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벌인다. 1949년 10월 1일에 뻬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자 장개석 총통이 이끄는 국민정부는 대만해협을 건너 중화민국의 임시 수도를 타이뻬이에 수립하고, 중국대륙과 통일을 실현시키는 것을 국가 제1의 과업으로 정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만인은 수천 년 전부터 대만에 살고 있는 원주민 소수민족과 중국대륙에서 건너온 한족이다. 한족은 청조시대 이전에 대만으로 건너온 본성인과 중국 공산당과의 싸움에 패하여 중국에서 탈출하여 건너온 외성인으로 나눌 수 있다. 외성인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외성인의 지배에 본성인들은 반감을 갖고 있다. 한편 소수민족은 마레이·폴리네시아어족에 속하며 수천 년 전에 대만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그들은 청조시대에는 원시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이라고 불렀고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고산족이라고 불렀는데 현재는 고산족·산포라고 불리고 있다.

 

소수민족 전체 인구는 약 32만 명에 이르는데 언어와 생활양식의 차이로 9민족으로 나눈다. 동일민족 내에서는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고산족과는 북경어를 사용하며 대화한다. 부족으로는 타이야르족(7만 6천), 사이샤트족(4천), 부눈족(3만 5천), 추오족(7천), 퓨마족(8천), 아미족(12만), 루카이족(6천), 파이완족(6만), 야미족(4천)으로 나눌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여행 첫날 저녁>

1월 말경에 출발하는 여행이지만 타이완은 아열대 기후여서 한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일행은 열한 명으로 나이는 10년이나 20년 이상의 차이가 나서 어찌 보면 밸런스가 맞지 않는 팀인 것 같지만, 4년 동안 같이 공부를 했던 공통의 의미를 가진 사이여서 이만한 팀도 없을 것 같다. 늦은 시간에 출발하여 첫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호텔에 여장을 푸는 걸로 시작하였다. 저녁 식사 후에 일행 중에 젊은 사람들이 마실 녹차를 사러 나가더니 과일 가게에 들러 오렌지와 대만대추까지 사왔다. 오렌지는 우리나라에서 늘 보던 수입과일처럼 반들반들하고 깨끗한 모양이 아니고 거무튀튀해 보였지만, 달고 맛있는 것이 무공해 과일이었다. 대만대추라는 이름의 과일은 작은 풋사과만한 게 사과 맛과 비슷했다. 과일과 차를 마시며 내일부터 보러 다닐 타이완에 대해서 기대에 차 모두들 늦은 밤까지 설레며 이야기 하였다.

 

 

 

<이에류(野柳) 지질공원>

 

아침부터 이슬비가 내리더니 온종일 비는 내렸다 그쳤다 하며 구질구질한 날씨가 계속 되었다. 모두들 노란색 비옷을 입고 이에류지질공원 관광에 나섰다. 거대한 바위에 버섯모양의 바위가 180여개나 있는 지질 공원은 선상암. 촉대석, 벌집암석, 생각석, 호혈 마둑판석, 해식동굴 화석 등으로 이루어졌다. 암석층의 주상절리에 의해서 형성된 갖가지 바위의 기묘한 모양에서 자연의 신비가 느껴진다. 클레오파트라를 닮았다고 해서 ‘여왕의 머리(queens head)’라고 이름붙인 바위 앞에서는 사진 찍으려는 사람이 많아 자리 차지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연결해 만든 작은 다리까지 하나의 풍경으로 아름다운데, 날씨는 계속 흐리거나 비가 내리며 바람이 심하다. 그 날 일행은 신비한 풍경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야시장 구경>

 

이에류에서 돌아와 잠시 쉬고 야시장 구경을 나섰다. 꽤 넓은 시장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 놓았는데, 시장에는 온갖 일상용품과 진귀한 음식들이 많았다. 그 중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에 젊은 여성들이 줄을 서있기에 들여다보니 일본인 청년들이 파는 ‘오뎅가게’이다. 청년들의 외모가 퍽 준수해 보이는 걸 보니, 여성고객들이 그 청년들을 보고 줄을 서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멋쟁이 모자 가게와 화려한 옷가게에 눈길이 가는 걸 보니 나도 아직 마음만은 젊은 여자인가 보다. 가지가지 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담긴 리어카에서 침이 넘어가게 맛있어 보이는 몇 가지 과일을 사 들었다. 그리고 무슨 음식인지 알 수 없는 가게 앞에서 호기심에 음식 만드는 걸 한참 쳐다보았지만, 선뜻 먹어보기에는 망설여져서 발길을 돌렸다.

 

야시장은 십자로(十字路) 형태로 죽 늘어서 있어서 다 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제 그만 돌아가려는데 유난히 북적거리는 가게가 보인다. 사람들이 모두 우동그릇만한 그릇에 담긴 걸 선채로 숟가락으로 후루룩 후루룩 퍼 먹고 있다. 국수인데 실처럼 가늘어 젓가락으로는 먹을 수 없어 죽처럼 퍼 먹어야 하는 것이다. 퍼 먹는 국수가 신기하고 궁금해서 먹어볼까 하면서도 비위가 약한 나는 맛이 어떨지 몰라 먹기가 주저 되었다. 일행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고서야 안심하고 나도 하얀색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퍼 먹었다. 먹어보니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용산사(龍山寺)>

 

‘용산사’ 정문으로 가는 길에 담이 길게 빙 둘러 쳐 있다. 담은 윗부분을 나무로 조각하여 화려한 색으로 단청을 입히고 기와지붕을 올렸다. 그 옆으로 '백천칭' 나무가 열을 지어 서 있는데 나무껍질이 켜켜이 덧붙인 듯 일어 선 것이 만져보니 푹신한 ‘스폰지’ 같다.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재미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동 식물들까지 볼 수 있는 것이다.

 

용산사는 1738년 청나라 때 중국 복건성 이주민들에 의해 세워졌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건물은 195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청나라 건륭왕이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왔다 하여 '용산사'라 이름 지었다 한다. 타이페이에는 수많은 사원들이 있지만 그 중 용산사는 가장 오래되고 전형적인 타이완 사원이다.

 

멋진 건축양식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며 돌기둥 앞 쪽에는 조화롭게 조각된 용이 있고, 뒤에는 역사적 인물들이 춤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앞쪽에 용 기둥 한 쌍과 중간에 용 기둥 4쌍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대리석 조각 기둥은 철망으로 가려 놓은 것이 있고 가려 놓지 않은 것이 있다. 가리지 않은 것은 단단한 재질의 대리석이고 재질이 연하여 쉽게 망가질 수 있는 나무는 보호막으로 철망을 둘러놓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신도들이 피워놓은 진한 향냄새와 더불어 대만인의 종교 생활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 전형적인 타이완 사찰로서 도교, 불교, 토속신 등, 서로 다른 종교의 색채가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절을 떠 바치고 있는 대리석 기둥의 기기묘묘한 아름다운 조각, 그 돌기둥이 어찌 그토록 화려한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화려한 향로>

 

용산사 경내에 화려하고 큰 향로가 놓여 있다. 향로에는 뚜껑을 떠받치고 있는 네 명의 인물상이 있는데, 네 명의 인물은 네델란드인을 묘사한 것이라 한다. 그 인물 조각의 표정이 몹시 힘겨워 보인다. 17세기부터 네델란드, 청나라, 일본 등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타이완은 네델란드 식민 시절이 가장 힘겨웠을까. 황금빛 등불이 사찰을 에워싸 번쩍이고, 많은 사람들이 향을 몇 개씩 움켜쥐고 향을 피우고 있어 사원 내에는 향냄새와 연기로 자욱하다. 이런 모습은 용산사가 도교적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기복신앙으로 향을 사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만의 불교는 모두 도교와 섞인 소승불교라 한다. 절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모두 시내 한 복판에 있고, 용산사 지붕을 바라보니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아름다운 채색의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다. 절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방마다 그 쓰임의 용도가 다르다. 부처를 모신 방이 있는가 하면 관운장을 모신 방이 있고 보살님이 타는 화려한 꽃가마가 놓인 방도 있었다. 관운장이 있는 절 방 앞에 신도들이 정성을 드리기 위해 가져다 놓은 꽃과 과일, 과자 등 여러 제물들이 그득하게 쌓여 있다. 그 방들은 모두 금빛 찬란하여 한국의 절과 비교하니 지나치게 화려하다.

 

 

 

 

 

 

 

 

 

 

 

 

 <기차 타고 타로각으로>

타로각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외국에 와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니 꽤 낭만적이 아닌가.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깥 경치에 정신을 팔고 창밖을 내다본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물 없는 강과 다리 풍경, 마을 바로 옆에 있는 묘지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일행과 이야기를 하면서 2시간 30분을 달려갔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타로각으로 향했다.

 

국립공원 아래 주차장에서 내려 버스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게 만든 산길은 걸어 올라갔다. 타로각 국립공원은 거대한 산이 전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리석 바위는 그 모양이 다양하여 거대한 조각품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대리석 산이라 해도 흙과 나무와 풀이 섞여 있어 물이 있고 생명도 있다. 한줄기 폭포가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은색 실을 보는 것 같다. 대리석 산 아래로 물이 흐르는 넓은 계곡이 계속 이어져 있는데, 그 계곡 위로 길에서 산으로 건너는 다리가 있었다. 대만의 원주민족 가운데 하나인 아미족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라고 한다.

 

 

 

 

<타로각 국립공원>

 

대리석의 바위에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에도 작은 조각의 바위에도 모두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져 있다. 화가가 그림이라도 그려 놓은 것처럼 형형색색으로 가지각색의 모양을 보여 준다. 걸어가는 길은 산을 깎아 만든 것이어서 수시로 대리석동굴이 나타나고, 그때마다 그늘이 져 매우 어두웠다. 대만에는 수시로 비가 온다는 말답게 살살~비가 내려 동굴에 들어설 때는 우산을 접고 노출된 곳에 나오면 우산을 써야한다.

 

이곳에는 제비가 많아 대리석 바위에는 제비집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다. 산을 뚫는 과정에서 무너질 만한 곳에는 집처럼 인공 동굴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어 건물 안에 들어 선 것 같기도 했다. 계속 사진을 찍으며 걸어가는데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에 담기에는 환상적이어서 내 사진기술이나 카메라의 기능이 오히려 부족하다.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지만 대만은 지금이 건기라서 냇물이 조금씩 졸졸 흐르고 있다. 산 전체가 모두 그 비싼 대리석이라니 그게 다 돈이 아닌가. 우리나라에 그러 곳이 있다면 하고 부러운 생각이 든다. 한 두 시간 쯤 걸었을 때 그제야 대리석 계곡에서 빠져 나왔다. 사람들이 뭔가 들여다보고 있기에 나도 틈새를 비집고 들여다봤더니 바위에 반짝반짝 하는 게 보인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금이다.

 

태로각으로 이동해서 장춘사, 연자구 구곡동을 버스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구경을 했는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타로각 국립공원은 장개석의 아들이 매일 군인과 원주민들과 죄수들에게 일을 시켜 멋진 관광지로 만든 곳이라 한다.

 

 

 

 

 

 

 

 

 

 

 

 

 

 

  

<대리석 공장>

 

대리석 계곡을 보고 난 후, 그 대리석으로 상품을 만드는 곳으로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만에서 생산한 대리석을 수입한다고 하는데, 이곳의 거의 모든 제품은 각국으로 수출 된다고 한다. 공장에는 거대한 크기의 대리석 조각품들이 많았다. 한국어를 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공장안을 두루 살폈다. 이곳에는 대리석만 있는 게 아니고 옥으로 만든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자주색 옥이 있고, 푸른빛의 옥으로 조각한 ‘피사’라는 이름의 두 마리의 용 조각품은 여의주를 물고 포효하듯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사자 상, 두꺼비 모양, 대리석 화병 등 멋진 작품을 보며 감탄 하였다.

 

 

 

 

 

 

 

<아미족 민속 춤>

 

다시 화련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아미족 쇼를 보러 갔다. 대만에 사는 사람들의 주류는 중국인들이지만 중국인들이 대만에 들어가 살기 전부터 대만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 중 원주민들 중 하나가 아미족이다. 남자 8명 여자 8명이 나와서 다섯 가지 종류의 춤을 추는데 그때마다 다른 의상을 입고 나와 다른 춤을 춘다. 춤이 무척 역동적이었다.

 

아미족 무용수들은 민속춤을 한 참 추더니 관광객 중에 남성을 끌어내어 원주민 여자와 전통 결혼식을 시킨다. 그들은 원주민과의 결혼식 체험 사진을 찍어 주고 돈을 받는다. 마지막에는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관객을 나오게 하여 손에 손을 잡고 같이 민속춤을 추게 하고 사진을 찍어 준다. 공연은 무료이지만 사진 값은 관광객의 몫이다. 즉석에서 둥근 모양의 작은 대리석 액자에 사진을 넣어 주고 만원을 받는다. 원치 않으면 거절해도 상관없다. 나에게도 대리석 사진 액자 하나가 손에 쥐어졌다. 그들은 그렇게 사진촬영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충렬사>

 

대만은 작은 섬이어서 모든 관광 일정이 누가 언제 가도 정해진 대로 거의 같은 코스이다. 정해진 순서대로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충렬사에 잠깐 내렸다. 군인들이 충렬사 정문을 지키는 현대식 수문장이 되어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눈을 전혀 깜빡이지 않고 마네킹처럼 서있는 군인은 눈이 아픈지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다. 수문장 교대식 시간이 되자 충렬사 안 광장에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딛을 틈조차 없었다.

 

태로각으로 가는 길에 아름다운 다리 장춘교가 있다. 다리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다시 다음 일정은 바다로 흘러가는 넓은 샛강을 따라 가는 길이다. 샛강의 바닥에는 석회가 깔려 있고 물은 석회질이 흘러 내려와 회색빛이다. 길 옆 계곡 아래로 대만에서 제일 작다는 절이 보인다. 1평쯤이나 될까 말까 해 보이는 작은 절이 신기하다. 여행객의 눈에 보이는 만물은 모두가 새롭다.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박물관은 타이페이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8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 궁전 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은 4층 건물로 중국 5,000년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집합체이다. 박물관은 대만 관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장개석은 중국본토에서 쫓겨나올 때 군함에 중국의 보물과 유물을 많이 싣고 왔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의 출토품에서부터 중국 역대 왕조의 보물 등 세계적으로 가치가 인정된 문물이 70만 점 가량 소장되어 있다. 유물은 박물관에 다 전시하지 못할 만큼 많아서 수장고에 두고 그 중에 일반에게 전시 공개되고 있는 것은 약 12,000점 정도이며 3~6개월마다 교체하여 전시한다. 전시품 중에는 옥으로 만든 배추가 있는데, 보물의 명칭은 ‘취옥백채’ 이다. ‘취옥백채’는 고궁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표 작품으로 대만에는 옥 배추를 본떠 만든 상품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다.

 

중국에서는 유물들을 몹시 아까워하며 돌려받고 싶어 하지만 대만에서는 돌려 줄 생각이 전혀 없다. 박물관에는 생전 보지 못했던 진기한 보물과 값진 유물들이 전시 되어 있어 일일이 자세히 보려면 몇 시간은 족히 걸려야 할 듯싶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전시품들을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 종일 걸려도 모자란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눈과 마음에만 담아 두고 박물관을 나섰다.

 

 

 

<대만 민주기념관>

 

세계 5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만 국립박물관을 보고 난후여서 몹시 피곤한 상태이다. 지붕이 웅장하게 보이는 손문 기념관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념관에는 들어가지 않고 대만의 유명한 101층 빌딩이 보이는 곳에서 빌딩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었다. 타이페이의 101층 건물은 지진이 많은 나라에서 그렇게 높은 빌딩을 지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만민주기념관'은 장개석 총통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1975년 장개석 총통이 사망한 뒤 그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총통이었던 아들 장경국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축한 곳으로 남색과 흰색을 바탕으로 천장은 국민당의 당 휘장으로 장식되어 있다. 25톤짜리 장개석 총통의 동상은 서쪽을 보고 서 있게 했는데 이는 총통부와 중국대륙을 향하게 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거대한 대리석 건물인 기념관 아래 그림 같이 조경이 잘된 자유공원이 있고 우아한 정자와 연못도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사진들과 장개석 총통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아한 명나라식의 아치가 정문이며 양측에 두 개의 고전적 건물이 있는데 각각 국립극장과 콘서트홀이다. 경상남북도만한 작은 섬나라,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 3박 4일의 짧은 기간에 둘러 본 대만 여행이 끝났다. 주마간산 격으로 보았지만 본 것과 느낀 것이 많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