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년
오순희
시골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 산을 배경으로 한 정경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삭막하고 밋밋한 큰길 보다 산 옆을 끼고 돌아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좋아한다.
서울에 볼 일이 있어서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산길을 통해서 가는 그 길은 거리로 따지면 더 멀지만, 신호등도 없고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아 시간상으로는 훨씬 빠르다. 도중에 허름한 구멍가게가 하나있다. 가끔 지나치는 그 점포는 커브길에 있어서, 그곳에서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천천히 우회전하면서 보니, 가게 앞에 좌판으로 쓰였을 작은 평상에 사람이 앉아 있다. 그는 다소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한국인이 아니었다. 이른 시간, 아직 문도 열지 않은 가게 앞에 혼자 앉아있는 소년에게 신경이 쓰였다. 지나치면서 본 그의 얼굴은 눈처럼 희고 머리는 착 달라붙은 곱슬머리 같기도 하고 짧게 깎은 것 같아 보였다.
휴전선과 가까운 곳이어서 이곳에는 군부대가 많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다 떠나고 없지만, 전에는 미군부대가 많은 소위 기지촌이어서 혼혈아를 낯설지 않게 보아왔다. 그런데 그 소년에게 눈길이 간 이유는, 몹시 초라하고 추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바지와 운동화 사이로 드러난 맨살, 얇아 보이는 셔츠와 짧은 머리가 내 모성애를 자극한 것일까. 열 대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힘없이 손을 양 옆으로 내려 평상을 짚고 있어,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더욱 깊이 새겨 주었다.
커브길을 돌아가며 슬쩍 지나친 후 사이드 미러를 통해 다시 한 번 돌아다 본 모습일 뿐인데, 그날 나는 운전하는 동안 주위의 고적한 가을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측은한 마음이 가슴 한 구석을 슬쩍 건드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가게 앞에는 커피자판기가 놓여 있는데, 언젠가 그 길을 지나다가 같이 가던 이와 커피를 뽑아 마신 적이 있다. 잠시 차를 세워서 그에게 따듯한 차 한 잔 건네 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을 때는 너무 멀리 와있었다.
몇 년 동안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습게 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도 지난날 엔 근로자들이 중동에 나가 일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곳 어느 시골집에 살고 있을 소년은,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작은 어깨가 더욱 추워 보였던 소년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외로워 보였다. 소년이 혼혈아인지 외국인 근로자인지는 모르지만, 따듯하고 행복한 생활이 되기를 바라면서 서울로 향했다.